"한자혼용 안하면 표현자유 제한" Vs. "한글만으로도 충분"

한글만 국어로 인정한 현행법이 위헌인지를 따지기 위한 공개변론에서도 전문가 의견이 엇갈렸다.

헌법재판소는 12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공문서와 초·중등 국어 교과서에서 한자 혼용을 허용하지 않는 '한글전용정책'을 규정한 국어기본법 3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법소원 심판대상인 국어기본법 3조 등은 지난 2005년 제정됐다. 한글만을 우리 고유문자로 정하고 있고, 공공기관의 문서도 한글로 작성토록 규정하고 있다.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와 초·중등학교 재학생, 학부모, 교사 등 333명은 지난 2012년 10월 "한자를 한국어 표기문자에서 제외한 국어기본법은 초·중등 학생들의 어문생활을 누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이들에게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해 한자문화를 누리고 교육받을 권리 등을 침해하고 학부모의 자녀교육권까지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한자가 우리 고유의 글자가 될 수 없고, 순우리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글전용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우리말과 한자어는 같은 DNA…동등한 지위 인정해야"

청구인측 대리인인 김문희 법무법인 신촌 변호사(사법고시 10회)는 "한자와 한글은 공용 언어로서의 지위로 봐야 한다"며 "국어 교과과정에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변론했다. 김 변호사는 "한자를 한글과 공용 언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말의 어의의 폭이 줄어든다"고도 했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을 부정하는 것이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한글의 우수성은 인정하지만 우리의 말과 글의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한자어 표기도 필요하다는 의미"며 "한자 사용은 풍부한 사고력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자사용을 제한하면 표현의 자유까지도 제한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참고인으로 나온 심재기 명예교수(서울대 국문학과)는 "우리나라 언어문자의 현실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생각해 한자 교육의 필요성도 인정된다"며 "한자 역시 나라글자로서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문자는 본질적으로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편의에 따라 사용되는 것"이라며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수웅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도 "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한자로 된 법전을 읽도록 하면 학생들이 읽지를 못한다"며 "한자를 알지 못하면 어휘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한글만으로도 충분한 의미 전달할 수 있어"

이해관계인인 문체부 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지평 박성철 변호사는 "한자 혼용은 불문헌법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현재 언론 매체에서도 한자 혼용을 하지 않고, 법제처도 법령에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한자 혼용이 '헌법적 관습'이라는 점도 인정할 수 없다며 한자 혼용을 할 경우 불필요한 사교육비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등교 한자교육은 학습 부담이 증가하고 사교육이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서량이 상당히 떨어지는데 한자혼용으로 독서량은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측 참고인으로 나온 권재일 교수(서울대 언어학과)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며 일상생활에서 한글과 함께 한자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건범 대표(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도 "초중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은 결국 사교육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한자 교육을 국어 교육에 포함하면 또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 내용을 참고해 심판대상 국어기본법 조항의 위헌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