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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와 관련해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에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과거 조작된 재무제표를 신뢰하고 투자했던 국민연금공단 등 연기금을 비롯한 '큰손'들에서부터 소액투자자까지 다양하다.
이들 투자자들이 온전하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벌써부터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 사안의 당사자인 안진회계법인을 비롯한 다수 회계법인들이 손해배상금과 변호사 선임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한 책임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약관에 따라 자칫 보험금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11일 서울중앙지법 등 법조계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대우조선해양과 안진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총 12건으로 소송규모는 1041억원에 달한다. 이 중 8건(878억원)이 올해 새로 제기된 소송이다. 국민연금, 사학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연기금이 제기한 소송규모가 709억원에 달한다. 과거 기간 조작된 재무제표를 신뢰하고 투자했던 소액주주들도 당사자로 다수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안진회계법인은 손해배상준비금과 손해배상 공동기금 명목으로 288억3000만원을 적립했다. 이는 '공인회계사법'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등 관련법령에 의한 조치다. 이와 별도로 안진회계법인은 올 6월부터 1년 기한으로 24억8400만원을 내고 전문가 배상책임보험에도 가입했다. 업무상 과실·착오 등으로 발생하는 법적 손해배상과 소송진행 등에 필요한 보상한도가 최고 2976억여원에 달하는 보험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관련법령상 회계법인은 기본적으로 손해배상 공동기금 적립의무가 있지만 전문가 배상책임보험 등에 가입하면 관련의무는 면책된다"며 "다만 안진회계법인과 같은 대형사는 보다 큰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기금적립과 보험가입을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 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주요 직책을 맡은 이사들의 업무상 과실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금과 소송 진행과정에서의 제반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원배상책임보험 등에 가입하곤 한다. 배상책임보험은 손해보험사가 판매하는 일반보험의 일종이다. 회계법인이나 일반기업의 임원 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험들도 있다.
최근 잇따른 소송에 직면한 안진회계법인 측은 "업무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충분한 커버리지로 보험에 가입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당사도 마찬가지로 보험에 가입했다"라고만 밝혔다. 고의·중과실로 인한 사안에도 보험금이 지급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보험사와의 계약조항으로 인해 밝힐 수 없다"라고 답했다.
이론적으로는 안진회계법인이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최대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손해배상 공동기금·준비금 자금에 앞서 언급한 전문가 배상책임보험의 보험금까지 더해서 3000억원이 넘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배상책임보험들이 대부분 고의·중과실로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의무를 면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안진회계법인은 올 3월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과거년도에 2조원대 분식회계가 있었음을 자인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우조선해양 역시 2013~14년 회계연도의 재무제표를 수정공시하기도 했다. 검찰의 부패범죄 특별수사단도 첫 타깃으로 대우조선해양 건을 지목했다. 안진회계법인의 고의나 중과실로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부정을 놓쳤다는 혐의가 입증될 경우 잇따른 민사소송에서 안진회계법인의 입지가 좁아질 뿐 아니라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자력으로 충당해야 한다.
안진회계법인 측은 자사가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이 고의·중과실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은 상태다. 보험보장기한이 올 6월1일부터, 즉 대우조선해양 분식혐의가 짙어진 이후부터 개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험금 지급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계약이 정해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잘하면 안진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이 손해배상금을 충분히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회의적인 전망이 더 많다. 안진회계법인이 내년 6월1일까지 가입한 전문가 배상책임보험의 경우 원수보험료(가입자가 보험사에 지급한 보험료)는 보상한도(보험사고 발생시 수령가능한 한도금액)의 0.8~0.9% 수준이다. 이는 2013~14년 사업연도에 안진이 가입한 보험의 원수보험료와 보상한도 비율(0.7~0.8%)와 대동소이하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가 불거진 시점을 전후해 보험료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관련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A 변호사는 "문제가 생기면 보험료가 올라가고 보험사는 인수를 거절하려고 하지 보장범위를 넓히려 하지 않는다"며 "과거와 같은 요율로 보험계약이 체결됐다면 고의·중과실에도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은 계약에서 빠져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B 손해보험사 관계자도 "일반적인 전문가 배상책임보험은 고의·중과실의 경우 보험금 지급의무 면책조항을 달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며 "고의·중과실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특별한 약관조항이 없는 한 고의·중과실 사안은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편 회계법인이 이해관계자 손해배상 등에 대비하기 위해 적립해야 하는 손해배상 적립규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분식회계 사안의 경우 감사대상 기업 뿐 아니라 회계법인의 미필적 고의에 따른 참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데 회계법인의 고의·중과실을 이유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면 투자자 손해를 보전받을 길이 더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외감법에 따르면 회계법인은 소속 공인회계사 수, 연간 회계감사 보수총액 등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금액을 기금으로 적립한다. 기금적립액 상한은 당해연도를 포함해 최근 3개년 감사보수 총액의 20%까지로 제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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