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의 다툼

어떠한 요건사실에 대한 주장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그 사실관계에 관한 주장을 한 경우 상대방 당사자가 다투지 않으면 위 사실관계에 대한 자백이 인정되어 법관은 그 사실관계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 당사자로서는 그렇게 되면 불리한 결과를 피하기 어려우므로 위 주장이 사실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위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다투면서 다른 사실관계가 진실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반면에 어떠한 요건사실에 대한 주장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승소할 목적으로 처음부터 거짓 사실관계를 주장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상대방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상대방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다투면서 양립할 수 없는 별개의 사실관계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송당사자의 법정에서의 거짓 주장에 대하여 형벌, 과태료 등을 과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거짓 주장에 대해서는 오직 판사의 통찰력에 기대어 판결로써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사소송은 사실관계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실제로 수많은 민사사건에서 사실관계의 다툼이 있습니다. 어떤 당사자는 억울하다고 하면서 법정에서 울고불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어의 눈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실은 하나이니까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최소한 그 기억이 왜곡된 것임을 분명합니다.

이렇듯 많은 민사사건의 승패는 진실을 찾는 작업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법관은 어떻게 진실을 찾아 승패를 가를 수 있을까요?

◇증거의 역할

민사소송법은 위와 같이 양 당사자 사이에 사실관계에 대한 주장이 대립하는 경우 대체적으로 그 요건사실에 대한 주장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그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책임까지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당사자로서는 필요한 사실관계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면 패소할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떠한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는 위 사실관계가 진실임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찾아볼 것입니다. 처분문서 등 객관적인 증거가 나타나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애당초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경우는 미리 분쟁 발생의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고 아무런 대책없이 무작정 법률관계를 만들어 놓았기에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이때에는 주변사람들의 진술에 기대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주변사람들의 진술서를 만들어 제출하기도 하고 주변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신빙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술해줄 사람을 찾기 어려워서 아니면 처음부터 거짓 주장을 했기 때문에 허위의 진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잘 아는 사람에게 자기에게 필요한 진술서를 작성하거나 증인을 서줄 것을 부탁합니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친분관계 때문에 거절을 못하고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작성해 주거나 증인을 서줍니다.

허위의 진술서를 제출하더라도 문제될 일은 별로 없습니다. 허위의 증언을 하는 경우에는 형법상 위증죄로 처벌되도록 되어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위증임을 의심하더라도 수사기관에 위증죄로 고발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결국 실제로 위증죄로 처벌되는 일은 매우 드물고 증언의 진실성은 위증죄에 의하여 담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상대방 당사자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반대의 진술을 해줄 증인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위의 진술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준비서면을 짜깁기하여 증인신문사항이나 진술서를 만들어내는 일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초보변호사 시절에 선배변호사로부터 그렇게 업무를 처리하라고 지시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증언이 실제로는 무슨 신빙성이 있겠습니까?

이렇듯 우리 민사소송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오염된 증거가 판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