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주의 PPL]노무현은 탄핵위기…오바마는 문제없는 이유?

편집자주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5일(현지시간) 노스 캐롤라이나 샬럿에서 공동 유세 행사를 마친 후 헤어지기 전 서로 포옹하며 볼에 키스하려 하고 있다./사진=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캠퍼스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 지원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AP/뉴시스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각 나라마다 선거관련 법제도가 다르지만 특히 미국 대선을 지켜보는 우리 시각에서 가장 의외의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오마바 현 대통령이 같은 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적으로 도왔던 점이다.

◇적극 유세지원하는 오바마…지지발언만으로 탄핵위기 몰린 노무현

오바마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대선에 뛰어 들어 힐러리를 지원했다. 투표 전날 펜실베이니아에서 미셸 여사까지 동반해 합동 유세를 벌였고, 미 전역을 돌며 지원 유세에 나섰다.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 때마다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하고 클린턴을 응원하기도 했다. 국내 정치 시각에선 낯선 모습이다.

만약 한국 대선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대통령은 당장 탄핵감이라는 비판을 받고 탄핵소추절차가 시작될 수도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이유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었다. 공직선거법 제9조에는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결정권을 가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지만 파면시킬 정도의 중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결정을 내렸다.

◇선거중립의무 대통령·부통령은 제외한 미국

미국도 연방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해치법(Hatch Act)'에 따라 연방공무원들은 선거 중립의무를 지켜야 한다. 다만 여기에 대통령·부통령은 예외로 돼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무원의 정치중립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미국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자신감으로 대통령·부통령은 제외했다고 설명된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돼 그만큼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했다고 믿고 대통령 발언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은 언론사도 특정 후보 공개 지지를 표할 수 있다. 실제 이번 대선에서도 대다수 주요 언론은 힐러리를 지지했고 트럼프를 깎아내렸다. 이는 '언론·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하고 있다.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같은 언론 상황과 현직 대통령의 적극 개입 속에서도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미국이 최우선시하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민주적 절차에 의한 지도자 선출이 정상적으로 작동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복되는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논란…꽉 막힌 선거법

반면 한국은 대통령의 당적 보유는 허락하면서도 선거개입은 막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선거 중립의무때문이 아니라 임기말 수세에 몰려 탈당했다. 법상 문제는 없기 때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때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일각에선 선출직인 대통령에게 당적을 허락하면서도 공무원 지위에서의 정치중립을 강요하는 우리 선거법은 자연스럽지 않고 모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때마다 대통령 중립의무 논란이 반복되고 탄핵위기 시발점이 되는 등 정치적 혼란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은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 표현도 제한적이다. 언론도 공정보도 의무에 특정후보 지지를 대 놓고 하진 못한다. 다만 일부 언론은 진영논리에 따라 특정 후보에 유리한 보도를 하기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하기'란 비판도 있다.

투표참여를 독려하면서 특정 후보지지를 포함해도 위법이다. 미 대선에선 트럼프 사생활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는데 국내에서라면 후보자 비방금지에 걸릴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선거운동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선거법상 제약이 많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선거법 제58조에 규정하면서도 단서조항으로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며 사실상 제한 규정을 많이 뒀다.

◇국민 수준 탓, 아직 더 필요한가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미국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국민 정치의식 수준이 충분히 높아져 선거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주요 언론의 일방적 공격, 오바마의 적극 유세지원에도 트럼프를 당선시킨 게 미국 국민들의 저력과 자신감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트럼프 당선에 놀라고 말 게 아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공직선거법에 고칠 부분이 없는 지 논의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직접 청구인으로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제9조가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2007헌마700) 물론 헌재는 청구 기각결정을 내리며 해당 조항은 합헌이라고 했다.

다만 간통죄가 지난해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듯 헌재 판단은 만고불변은 아니다. 선출직인 대통령에게 당적을 허락한 이상, 관권동원이 아니라면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는 줘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