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전 두목인 김태촌씨가 영화배우 권상우씨에게 일본 팬미팅 공연을 강요해 문제가 됐던 일이 있다. 이때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법률상 의무 있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는 폭행 또는 협박죄만 성립할 뿐 강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김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팬미팅 공연에 대한 답례로 권씨 일행에게 1억원이 넘는 고급시계를 주었음에도 그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이 일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특히 일본 팬미팅 공연에 관해 특정인에게 독점권이 있고 구체적인 행사내용은 서명·날인 작성한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는 확인서까지 보게 되자 김씨는 권씨가 팬미팅 공연을 할 의무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믿고 있는 상황에서 김씨는 권씨에게 팬미팅 공연을 강요했다.

김씨는 권씨에게 만날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거절당한 후에도 김씨는 권씨에게 전화로 재차 만날 것을 요구하면서 팬미팅 공연이 이행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을 했다. 김씨는 미팅 공연을 하라고 강요한 혐의로 검사에게 기소당해 형사 재판을 받게 되었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대법원 제1부(주심 고현청 대법관)는 김씨가 일본 팬미팅 공연을 강요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김씨가 권씨에게 공연을 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 대한 미필적 인식 즉, 강요죄의 고의가 피고인에게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에서는 '의무 없는 일'이라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의무 없는 일이란 자기에게 권리가 없고 상대방에게 의무가 없는 일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그 일을 할 의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게 만들면 문제가 된단 얘기다.

이 사건에서 폭력조직 전력이 있는 김씨가 권씨에게 팬미팅 공연을 하도록 강요하면서 만날 것을 요구하고 팬미팅 공연이 이행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권씨에게 의무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강요죄로 처벌할 수는 없단 얘기다.

◇ 판결 팁 = 강요죄는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가 없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경우에 적용된다. 이 사건에서는 의무가 없는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협박 행위가 있었지만 김씨가 그렇게 한 이유는 권씨에게 그 의무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으므로 무죄 판결이 나왔다.

◇ 관련 조항

형법

제324조(강요)

①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