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만취하지 않은 여성을 만취했다고 착각한 상태에서 성폭행한 경우에도 준강간에 대한 불능미수로 봐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결국 술에 취한 여성에 대한 동의 없는 성관계가 이뤄진 경우 앞으로 무죄 판결을 받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가해자가 함께 술을 먹고 관계를 가진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있다. 동의 없는 성관계가 이뤄졌다. 술을 같이 먹었기에 폭행·협박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해자는 준강간죄로 기소된다. 이런 경우 이제까지 가해자는 준강간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만취 상태가 아니었다면서 빠져나갈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까지도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적용돼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A씨는 B씨가 술을 마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이라고 보고 그런 상태를 이용해 성폭행하려는 마음으로 실제로 B씨를 성폭행했다. 원래 이런 경우라면 준강간죄가 성립한다. 하지만 B씨가 그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의 쟁점은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될 수 있는지’가 됐다.

준강간죄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A씨의 경우 B씨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실제로 B씨가 이런 상태가 아니었다면 준강간죄가 적용될 수 없다.

이에 준강간죄 무죄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로 봐서 유죄로 판단해야 할지 법원은 고심에 빠졌다. 그 결과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결국 후자로 판단해 유죄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가 만취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 준강간 자체의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객관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저질렀기에 처벌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다.

불능미수란 결과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해 미수지만 위험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즉 어떤 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그 죄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보통 불능범은 처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불능범이라 하더라도 위험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불능미수에 대한 처벌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칼을 찔렀다면 살인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칼을 찌른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바위였다. 그렇다면 대상의 착오로 살인죄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험한 행위를 한 것이기에 살인죄의 불능미수로 처벌할 것인지가 법적 쟁점이 된다.

1심 법원은 강간 혐의는 무죄이나 준강간은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심 단계에서 검사는 준강간과 함께 준강간미수도 판단해달라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에 2심 법원은 이를 허가한 후 1심 법원의 판단과 달리 준강간 무죄, 준강간의 불능미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2심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유죄를 확정짓고 준강간죄의 불능미수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필우 변호사(입법발전소)는 “이제까지는 보통 같이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해 폭행과 협박이 인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폭행이 문제됐을 때 피해자가 의식이 남아 있었다면 준강간죄가 적용되지 않기에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면 이제는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적용돼 유죄 판결이 나온다는 것”이라며 “준강간으로 기소되면 상대방이 심실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무죄를 다퉜지만 이 역시 처벌된다면 무죄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결국 상대방의 동의 없이 행한 성관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는 점에 있어서는 상당히 진일보한 판결”이라면서 “판결로 이런 경우를 처벌하는 것보다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해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대법원의 판결로 처리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