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단체로서 실체를 가진 전통 사찰은 소송 당사자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인왕사가 총무스님으로 재직했던 망인 A씨 유족들을 상대로 낸 보관금반환소송 상고심에서 원고가 소송 당사자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했다.

대한불교 본원종 소속 사찰인 원고 인왕사는 2007년 1월부터 2009년 8월경까지 인왕사의 총무스님으로 재직했던 망인 A씨가 사찰의 돈으로 개인 빚을 갚고 사찰 부근 재정비사업으로 수령한 보상금이 망인의 처와 자녀 3명에게 상속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고는 A씨의 유족들에게 1억3500만원의 보관금반환을 청구했다.

A씨가 원고 인왕사의 돈을 자신 명의의 계좌에 보관하고 있다가 그 중 3000만원을 자신의 빚을 갚는데 사용했으며, 1100만원을 타인에게 빌려줬다는 게 인왕사 측 주장이었다.

또 A씨 명의의 계좌에 두 차례에 걸쳐 입금된 8500만원과 5000만원은 모두 원고 사찰이 그 부근에서 진행되던 재건축정비사업과 관련해 수령한 보상금임에도 A씨 사망 뒤 유족들이 해당 보상금을 반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의 유족들은 원고 사찰이 서로 다른 종단의 개인 소유 작은 절들이 모인 연합체에 불과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법 제52조에 따르면 법인이 아닌 사단이나 재단은 대표자 또는 관리인이 있는 경우에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

1심 법원은 원고 인왕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 사찰을 구 전통사찰보존법 제3조에 의해 등록된 전통사찰로서 독자적 권리능력과 당사자능력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가 개인 계좌에 보상금 등을 보관한 것은 사실이나 정당한 사유 없이 그 반환을 거부했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보상금을 횡령했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심도 원고 패소 판단을 했으나 1심과 다르게 원고가 소송 당사자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창건 시기·창건주·사찰 재산목록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점과 사규에 따르면 원고 재산에 관한 실질적 권리가 창건주에게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의 당사자능력이 부족하다는 피고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2심이 근거로 든 사규 규정 등만으로 인왕사의 당사자능력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가 조선왕조실록 발췌본을 제출하는 등 전통사찰로서의 유래를 밝힌 점과 1988년 전통사찰 등록 당시 작성한 보고서에 이 사건 전각들이 주요 건물로 등재돼있는 점 등을 통해 원고가 독자적 규약을 가지고 물적·조직적 요소를 구비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은 원고가 현 상태에서 당사자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를 먼저 확정한 후 해당 사건의 사정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사건을 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