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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대 대법관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
일반적으로 판결은 재판 과정에 참여한 법관들의 의사가 일치된 상태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때문에 3인 이상의 합의 재판부는 반드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 서로의 의견을 나눈 뒤 일치된 하나의 목소리로 판결문을 작성한다. 합의 중 어떤 법관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우리나라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만은 예외다. 다수결로 결정 혹은 판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법관 모두의 의견이 결정문과 판결문에 기록된다. 그래서 법관들 사이의 이견을 엿볼 수 있는 게 헌재의 결정문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문이다. 의견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속 별개의견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지난 30일 이뤄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블랙리스트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몇몇 소수의견들이 나왔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오는 3월4일 퇴임을 앞둔 조희대 대법관의 별개의견이었다.
조 대법관은 '위법수집증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 건넨 지난 정권 청와대 문건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형법은 위법으로 수집된 증거를 배제한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단 뜻이다. 즉, 아무리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증거일지라도 법에 근거해 수집된 증거가 아니라면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수 없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하급심 판단에서 주요 증거로 쓰인 '청와대 문건'은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제출한 것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는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국가안보실 등에 있는 캐비닛에서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작성된 문건 수천 개를 우연히 발견했다며 그중 일부를 공개하고, 자료 사본을 특검에 제출했다. 이는 일명 '캐비닛 문건'이라 불리며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등 검찰 수사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법관은 "수사권이 없는 대통령이나 대통령비서실이 의도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검사 또는 특검에 제출하는 것은 일반적인 수사절차의 모습이 아니다"며 "이는 수사절차 개입 행위에 해당한다"고 표현했다.
이어 "이러한 행위를 허용하면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데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조 대법관의 의견 하나로 대법원의 판단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행위 대부분에 대해 하급심 판단과 같은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평생을 법관으로 살아온 대법관들이 남긴 별개의견은 그게 무엇이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위법수집증거가 맞냐 아니냐가 아닌, 원칙을 강조한 그의 의견을 말이다. 퇴임을 앞둔 그의 이 마지막 일갈은 추후 수많은 판결을 내려야 할 후배 법관들에게 또 하나의 참고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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