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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그대로인데 월급은 뚝…임금피크제 20년 뜨거운 공방[별★판결]

별난 판결, 화제가 된 판결을 전해드립니다.

대한민국 법원. /사진=머니투데이DB


정년은 그대로인데 월급만 깎인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는 정년이 늘더라도 월급 삭감 폭이 더 커 정년이 늘기 전보다 월급 총액이 줄어든다면 그저 좀더 오래 일할 수 있게 된 데 만족할 수 있을까.

임금피크제가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임금피크제에 대한 법정 공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사가 첨예하게 맞서는 공방의 한가운데에는 정년과 임금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 자리한다.

이미 대법원 판례가 적지 않지만 처한 현실별로 사례와 쟁점이 워낙 다르다 보니 아직까지도 재판부의 판결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소송전이 앞으로도 좀처럼 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 이상인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유지하는 형태(정년 유지형)와 △정년을 늘려주는 형태(정년 연장형)로 구분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었다. 이후 2016년부터 정년 60세가 의무화되자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노사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소송전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소송에서 쟁점은 개별 기업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유효한지다. 고령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것이 연령 차별에 해당하는지, 임금 삭감 폭은 적법한지 등을 두고 다툰다.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무효"


정년을 그대로 둔 채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임금만 깎는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퇴직 근로자 A씨가 2009년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2011~2014년 삭감된 임금을 받자 "고령자고용법 위반인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이 2단계,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았으니 차액을 지급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의 판결이었다. 1, 2심에서 전자기술연구원이 A씨에게 임금 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도 A씨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연령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고 적시했다.

여기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방법이나 정도가 적정하지 않는 경우"라고 대법원은 밝혔다. 대법원은 당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의 적정성 △임금 감소에 따른 보완 조치의 적정성 △감액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했는지 등을 제시했다.



"정년 안 늘렸더라도 무조건 무효는 아냐"


대법원 판결 이후 정년을 그대로 둔 채 임금만 깎는 방식의 임금피크제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합리적인 이유'를 달리 해석하는 판례가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38-2부(부장판사 민지현)는 지난 8월 인천국제공항공사 퇴직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한 1심을 뒤집고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인국공은 2016년 3급 이하 직원의 정년은 만 59세에서 60세로 연장하고 2급 이상 직원의 정년은 기존대로 61세를 유지하면서 전체 직원의 임금을 58세부터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2급 직원(전문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5명은 이런 조치를 두고 "정년 연장 없이 임금만 삭감됐다"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2급 이상 직원들이 임금만 삭감되는 불이익을 입었는데 이를 보전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과도한 불이익을 감수하게 됐다"며 인국공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봤다.

하지만 2심은 "이 사건에서 임금피크제는 연령과 직급에 따라 근로자 임금에 차등을 두는 경우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감액기간과 지급률에서 이례적인 수준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내용이 설계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정년을 늘리지 않은 임금피크제가 무조건 무효는 아니라는 판단인 셈이다. 직급 등에 따라 고위직 일부 직원만 정년 연장 없이 임금을 삭감하는 구조를 연령 차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뜨겁다.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대체로 유효"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판결이 사안에 따라 엇갈리는 것과 달리 정년 연장형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상대적으로 더 명확하다. 정년을 연장한 것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KT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무효를 주장하며 회사를 상대로 낸 두차례의 소송에서 원고(직원) 패소한 원심을 올 5월과 6월 잇따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본안 심리를 진행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다.

KT는 2015년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6세부터 매년 10%씩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직원들은 "업무량과 업무강도가 줄어들지 않았는데 임금만 삭감돼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정년 연장이 임금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며 "KT의 경영사정이 매년 악화되면서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인건비를 절감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고 보이고 직원들은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결국 임금 총액 측면에서 더 많은 액수를 지급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보다 임금이 더 오래, 더 많이 깎였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종업계에서 도입한 임금피크제보다 임금 감소 기간이 더 길고 감소율도 더 크지만 KT의 근속연수는 18.3년으로 SKT 12.9년, LG 유플러스 7.1년보다 길다"며 "직원 중 고령자 비율이 높아 정년연장으로 인한 부담이 다른 회사보다 더 큰 만큼 정년을 늘린 데 따라 증가한 고령자 급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삼성화재, 메리츠화재해상보험, 한국농어촌공사의 노사간 임금피크제 소송에서도 같은 이유로 모두 회사 측의 승소를 판결했다.



"정년 늘어도 이런 경우는 무효"


정년을 늘린 임금피크제여도 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도 있다. 늘어난 정년에 비해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친 경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정회일)는 지난 5월 KB신용정보 전·현직 근로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직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KB신용정보는 2016년 2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직원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고 만 55세부터 기존 연봉의 45~70%를 업무 성과에 연동해 지급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근무기간이 2년 늘었음에도 임금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며 "임금 삭감이라는 불이익이 초래됐는데도 회사는 업무량이나 업무강도 등 불이익에 대한 조치를 적절히 마련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 다른 나라는 어떻게


임금피크제는 일본에서 먼저 도입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늘어나는 호봉제 등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를 채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하면서 근로자들의 정년 연장 요구가 늘어난다는 점도 비슷하다.

미국이나 영국에는 법적인 정년의 개념이 없어 임금피크제도 필요치 않다. 두 나라를 비롯해 매년 연봉 계약을 새로 맺는 연봉제형 임금 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성과에 따라 임금이 낮아지는 구조다. 나이 많은 근로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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