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매달 기본급 200만원에 정기상여금을 격월로 200만원씩 지급하는 회사에 입사해 20년간 근무하다 퇴직했다. 근로관계 종료 시점에 퇴직으로 마지막 정기상여금을 단 한 차례 수령하지 못한다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산입해야 할까.

19일 대법원은 이러한 정기상여금을 소정근로 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당연히 수령할 것을 기대하는 임금으로 보고, 매달 기본급 200만원에 정기상여금을 월단위로 환산한 100만원을 합한 300만원이 A씨의 통상임금이라 판단했다. 지금까지 A씨의 통상임금은 200만원만 인정됐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야간·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과 퇴직금 산정기준으로 쓰이는 통상임금 법리가 11년 만에 근본적으로 변경됐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을 말한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이 통상임금 판단기준에 '고정성'을 추가했다.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재직조건, 근무일수, 근무실적 등을 토대로 지급여부나 지급액이 정해지는 임금은 고정성이 부정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 판례의 요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은 이 고정성이 요구하는 '임금의 지급여부, 지급액의 사전확정'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줄인다고 봤다. 회사가 재직조건 같은 지급조건을 부가하면 손쉽게 해당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임금의 기능도 고려됐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근로시 가산의 기준이 되는 금액인 만큼, 해당 근로를 제공하기 전에 사전에 임금이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성취 여부가 불확실하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종전 판례는 예측가능성은 추구했지만, 소정근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이번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번 판례에서 대법원은 '소정근로를 온전히 제공할 경우'란 조건을 달아 이를 충족하는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정기성'과 '일률성'만 갖추면 통상임금이고,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구분했다. 통상임금에는 조건유무와 그 조건을 성취할 가능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도 이번 판결이 노사관계 등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새로운 법리를 이 판결 선고일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2013년 판결은 노사간 임금협상에 토대가 돼 수많은 법률관계의 기초가 됐고 판례변경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도 이해관계 규모도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을 의식한 조치다.

재계는 이번 판례 변경이 기업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외 경영환경이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인건비를 늘려야 하는 판결이 나온 만큼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며 "당장 내년도 노사협상에서 어려움이 예상되고 고용과 투자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