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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이 휴대폰 번호 가입자 신원을 확인하려 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이 논의되면서 수사 현장에서 "수사가 사실상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는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휴대폰 번호의 가입자 이름과 주소 등 통신이용자정보는 법원의 영장 없이도 조회가 가능하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신자료를 제공받을 때 법원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지난해 대표발의해 현재 상임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다. 황 의원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건수가 2022년 483만여건에서 2023년 514만여건으로 급증하고 국회의원, 언론인 등에 대한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이 이뤄지면서 '묻지마 사찰'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해당 법안에 대한 수사 현장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수사가 초기의 단서 확보 단계에서부터 지체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한 검찰 간부는 "영장 의무화가 도입되면 간단한 인적사항 조차 판사의 영장을 먼저 받아야만 알 수 있게 돼 수사 현장에서의 시간과 인력 소모가 상당히 커질 것"이라며 "긴급 및 초동 수사에 큰 지장이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납치·성범죄·디지털성범죄 등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는 사건은 즉시 조치가 필요한데 영장 발부를 기다리는 동안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영장 발부까지 추가적으로 최소 1~2일 이상의 시간 지연이 필연적으로 발생해 신속 수사에 장애가 생긴다고 한다.

휴대폰 가입자 정보 등 통신자료는 사건에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기초자료에 불과한데 이 단계부터 법원의 심사를 받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은 통신이용자정보를 통해 확보한 인적사항을 토대로 범죄 연관성을 확인해 수사대상자를 특정하거나 범위를 좁힌다.

한 경찰 간부는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 같은 기초적인 정보는 범죄 수사의 기초이자 가장 기본적인 수사 수단"이라며 "기초 정보에 대한 영장 발부 과정을 매번 거치면서 불필요한 서류만 낭비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대검에 따르면 2014~2023년 매년 평균 700만건에 달하는 통신자료 조회가 수사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모든 건에 영장을 청구·발부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미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절차가 통제를 받고 있어 남용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한 경찰 간부는 "현재 통신자료 조회 시 총경급 이상이 결재하는 등 내부 승인 절차를 거쳐 기록을 남기므로 충분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처럼 신속한 협조 체계를 두되 위법 남용 시 사후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미 업무 과부하로 재판 지연 문제를 겪는 법원에 영장 업무가 추가된다면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23년 법원에 접수된 영장 청구 건수만 약 50만건에 달한다. 한 법조인은 "수백만건에 달하는 영장 업무가 추가로 늘어난다면 업무가 굉장히 과중해질 것"이라며 "사실상 형식적으로 발부해야 가능한 수준이라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미국 등에서도 수사기관이 기본적인 휴대폰 가입자 정보를 조회하는데 영장을 요구하진 않는다. 미국 수사기관은 검사의 행정 소환장(subpoena)만으로도 서비스 제공자에 가입자 이름, 주소와 IP 접속기록 등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제공자는 이에 응해야 한다. 해당 정보가 제3자(통신사업자)에 이미 제공된 것이어서 이용자가 프라이버시 기대를 갖기 어렵다는 '제3자 원칙'에 기반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6년 포털사이트가 수사기관 요청으로 회원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 적법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반면, 제공으로 제한되는 사익은 해당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한정된다"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가입자 이름 등 제한적인 개인정보만 제공되는 것이므로 사생활 침해는 비교적 경미하며 이를 통한 범죄대응의 공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다만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에 영장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한 변호사는 "수사 편의를 이유로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영장 없이 수사기관 요청만으로 개인정보를 넘기는 것은 사법적 통제의 부재로 위험하며 통신이용자정보 취득 행위도 넓게 보면 국가기관의 권력 행사이므로 예외 없이 영장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