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 배우 정우성씨 등 지인들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억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명 방송작가 박모씨(46). 그는 지난달 27일 열린 1회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을 비공개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법원의 대답은 냉정했다. 재판부는 "비공개 재판은 배려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박씨의 요청은 법적 근거가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수면내시경을 받기 위해 마취에 빠져 잠든 여성 환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양모씨(58). 그도 지난달 열린 1회 공판준비기일에서 "사건이 이미 언론에 보도된 상황에서 재판 진행 상황이 다시 알려질 경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적인 부분과 관련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심리 전체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개인적 사유를 들어 비공개로 재판을 진행해줄 것을 요청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 법원이 공개재판주의 원칙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재판주의는 법적 근거는 헌법과 법원조직법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을 때'는 법원 결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방위사업 비리와 관련한 재판 과정에서 군사상 기밀이 드러날 우려가 있는 경우 재판부가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은 예외적으로 재판을 비공개로 할 수 있는 조항들을 두고 있다. 만약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면 재판부는 방청객과 피고인을 퇴정시킨 채 신문을 진행할 수 있다. 범죄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또 성폭력범죄와 관련한 심리는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판 비공개 결정이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린 만큼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성매매 혐의와 관련한 사건의 경우 비공개로 재판이 진행되는 사례가 잦다는 것이다.

성매매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은 배우 성현아씨의 파기환송심 공판도 최근 비공개로 진행됐다. 성씨 측의 비공개 요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또 유명 여가수 등을 재력가와 성매매하도록 연결해준 혐의로 기소된 강모씨(42)등에 대한 재판에서도 재판부는 직접 성매매를 한 의혹을 받는 연예인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비공개로 신문을 진행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문제는 성매매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성매매 혐의를 받는 사람들 재판까지 비공개로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비공개가 가능하다지만 강도나 살인과 같은 재판도 대부분은 공개로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재판을 통해 추가로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생길 수 있을 만큼 비공개 결정을 폭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 비공개와 관련해서는 각기 다른 사안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며 "피고인이 상처받는 범위를 넘어서 그 가족과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경우 비공개 재판을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