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항균필터·식품·정수기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한 자동차회사가 누수 관련 문제점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에게는 고지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더군다나 자사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고객에 한해 무상으로 은밀하게 수리를 진행한 것이 드러났다. 소비자들이 이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 분개하는 상황이 또 발생했다. 소비자는 모든 제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전부 미리 알 정도의 전지전능함을 갖춰야 제대로 된 배상을 받거나 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는 진정으로 소비자에게 필요 이상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호소다 마로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에 주인공인 마코토처럼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리프 능력을 갖춰 해당 제품을 구매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 뿐이다.

영화 속 마코토는 타임리프 능력을 통해 성적도 좋아지고 실수도 줄면서 자신에게 고백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마음대로 타임리프 능력을 사용한 벌을 받게 된다. 현대 사회의 소비자가 이런 능력만 있다면 해당 제품을 제조한 회사에게 적절한 응징을 가하면서 강력한 불매운동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 고지 의무의 중요성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우리가 보기에 과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모두 소송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맥도날드 커피 소송'이다. 1994년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구매해 마시면서 운전을 하던 79세 여성이 뜨거운 커피를 엎질러 화상을 입었다. 그는 맥도날드가 제시한 2만달러의 의료 비용에 대한 합의를 거절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년간 700건의 유사 청구를 당했던 맥도날드는 업계 기준보다 커피온도를 20도(°F)가 높은 180~190도(°F)로 유지했다. 그런데 이 온도를 낮추지 않은 채 고객들에게 그 위험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미국 법원은 맥도날드에게 64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어 상기 사례처럼 배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2000년 제정된 제조물책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표시상의 결함에 해당될 경우에는 일부 배상이 가능하다.

제조물책임법에서는 표시상의 결함에 대해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설명·지시·경고 또는 그 밖의 표시를 하였더라면 해당 제조물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는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이 법령을 통해서 소비자들이 구제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소비자가 불매운동을 통한 행동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소비자들이 타임리프같은 능력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므로 정부가 사전 고지 의무화 제도를 강화하는 방법이 조속히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스카이특허법률사무소의 김태민 변호사는 식품영양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식의약 관련 사건을 주요 분야로 삼아 일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에서 식품과 의약품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