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화여자대학교 홈페이지 이사회 회의록 캡쳐. 제4, 5안건이 삭제돼 있다.

회의록 공개 후 삭제…사학법 위반이지만 처벌 규정 없어

현재 이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학교법인 이화학당의 이사회 회의록은 총 3개다. 그 중 6월 9일자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안건 제목부터 텅 비어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안건이 순서대로 있기 때문에 몇 번째 안건이 삭제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이사회가 해당 날짜에 미래 라이프 대학(미라대) 설립을 최종 의결했다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삭제된 부분이 그 내용이라고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대 측에서 이사회 회의록을 삭제한 것은 현행 법 위반일까. 이대는 사립학교이므로 사립학교법(사학법)의 적용을 받는다. 사학법엔 이사회 회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규정하면서 다만 몇 가지 사항은 비공개해도 된다고 규정했다. 개인정보 등 공개돼서는 안 될 민감한 사항이 이에 해당한다.

관련 하급심 판례에서는 합의제기관 관련 정보가 의사결정과정 정보로 비공개대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입법 취지 △합의제기관의 성격 △합의제기관이 작성한 정보의 내용과 성격 △정보 공개의 방법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그 공개로 인해 침해되는 이익과 공개로 인해 얻는 이익을 비교형량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2006구합24183 판결)

삭제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정확히 공개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강정규 변호사는 "이사회 회의록 비공개에 대해서는 경영 비밀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법원까지 간다면 질 가능성도 있다"며 "의사록 특정 내용 공개 거부 자체는 가능한 부분이지만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건 자체는 이미 공지된 사안이므로 비밀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만약 법의 예외 조항처럼 정말로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다면 일부 삭제 후 공개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통째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이렇게 회의록을 삭제해 관련 내용을 비공개한 것은 사학법 위반이지만 해당 조항을 위반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은 곧 학교 측에서 이사회 회의록을 충실히 작성하지 않게 될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는 곧 밀실 행정과 졸속 행정 은폐로 직결된다.

졸속 행정·소통 없는 사업 추진…학생들 불만 높아

한편 이대의 미라대 추진 과정에서 다른 문제도 드러났다. 이대 측은 평의회와 이사회를 거친 바로 다음 날 교육부에 사업 계획서를 냈다. 물론 그 전에 철저히 준비를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많다.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단 지적도 있다.

이대는 교육부의 여러 사업에 앞장서 참여하고 있다. CK, ACE, CORE, 평단, PRIME, BK21 플러스 사업까지 5개 사업에 달한다. 게다가 WE-UP 사업은 아직 최종 대학이 선정되지 않은 점과 이번에 문제가 됐던 미라대, 즉 평단 사업에도 참여했다가 백지화 한 것을 포함하면 사업 수는 더 늘어난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일방통행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중 하나인 학생과 소통하지 않은 점이 문제다.

소통 없는 사업 추진으로 본관을 점거한 교수들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자 이대 측은 지난 3일 미라대 설립을 전면 백지화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본관 점거는 최경희 이대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계속되고 있다. 여기엔 이대 학생들이 최 총장에게 갖는 뿌리 깊은 불신과 불통이 깔려 있다.

총장 사퇴 내건 본관 점거…장기화 우려

다만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진 것은 학교가 자초한 면도 있다. 이대 특성상 여학생뿐인 본관 점거 학생들을 1600여명의 경찰을 동원해 강제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며 사태가 확산됐다.

시위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대 학생들은 만민공동회라는 방식을 통해 주최자가 없는 시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모두가 익명게시판을 통해 의견을 낼 수 있고 그것이 회의의 안건이 된다. 이 특이한 방식은 민주주의의 핵심과 맥을 같이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이를 의사 소통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데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사퇴 요구에 대해서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있는 최경희 이대 총장과 반대로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본관 점거를 풀지 않겠다는 이대 학생들. 어떻게 이 사태가 마무리 될 것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