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사진=뉴스1

타인의 땅에 설치된 조상들의 묘를 수십년간 관리해 온 후손과 땅 주인이 토지 사용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2일 오후 원모씨(79)가 원주원씨도창공파 후손들을 상대로 낸 분묘철거 등 소송의 상고심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사건의 쟁점은 '타인의 땅에 분묘를 설치한 경우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취득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례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다.

이에 따라 △분묘기지권 시효취득을 인정하는 관습법이 존재하였는지 여부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이 소멸하였거나 존속한다고 주장하는 근거 △구 장사법의 시행 등이 분묘기지권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분묘기지권을 둘러싼 사회현실과 사회 구성원의 인식, 장묘시설의 확충, 장묘문화의 개선 등 사회적 여건의 성숙 여부 등이 논의됐다.

원고 측 대리인은 "조선총독부 관습조사 보고서, 1933년에 발간된 민사관습회답휘집 중 분묘굴이의 청구권에 관한 자료 등에 따르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관련 관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토지소유자가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아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를 개장할 수 있고, 분묘 연고자는 토지소유자 승낙 없이 설치한 분묘에 대해 해당 토지소유자 등에게 토지 사용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한 장사법 시행 이후 관습법 존재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법적 확신도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현대사회에 이르러 장묘문화 및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며 "현재 80%가 화장 방식의 장례를 택하고 있고,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인정할 경우 국토이용의 효율성이 저해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피고 측 대리인은 "대한제국 융희 3년 한국관습조사보고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조사자료 등 분묘기지권 관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각종 근거들이 존재한다"며 "약 100년간 법원에 의해 분묘기지권이 인정돼 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화장률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매장할 토지를 구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이지 국민들의 장묘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며 "대부분의 국민은 여전히 분묘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갖고 있고, 대법원이 인정한 분묘기지권을 존중하는 입장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분묘기지권을 폐지할 경우 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국민의 인식과 동떨어진 관습법 폐지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원주원씨도창공파종중의 후손들은 1733년부터 이 토지에 문중 시조와 증조부, 부모 등의 묘를 안치해 왔다. 이들은1985년 6월 원주시 행구동 소재 임야 14,257㎡에 대해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지만 이후 이 사건 원고인 원씨가 이 땅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소송을 내 승소했다.

이에 따라 원씨는 2009년 10월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이 곳에 설치돼 있던 종중의 분묘 6기를 철거하라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해당 토지 내 각 분묘가 설치된 뒤부터 이 사건 소송이 제기되기 전까지 20년 넘게 후손들이 분묘기지를 점유해 왔다"며 "이로써 후손들이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가운데 후손들이 20년 이상 점유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한 분묘 1기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할 수 없다고 보고, 원씨의 청구대로 분묘를 철거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