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故 백남기씨의 시신 부검 관련 압수수색검증영장에 부수된 문서/제공=박주민 의원실

영장 청구 기각 사유/제공=박주민 의원실

법원이 고 백남기씨의 시신 부검과 관련해 모든 과정에서 유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집행할 수 없다는 취지로 압수수색검증 영장(부검 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 전문가들도 조건부 형태의 이례적 영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해석의 여지를 둔 부검 영장 발급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검 영장에 부수된 '압수수색검증의 방법과 절차에 관한 제한'이라는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문서에는 부검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부검의 방법과 절차에 관해 이행해야 할 사항이 적혀 있다.

◇ 해석 여지 남긴 애매한 부검 영장

공개된 문서에는 "부검 실시 이전 및 진행 과정에서 부검의 시기 및 방법과 절차, 부검 진행 경과 등에 관하여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함"이라고 쓰여 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내용에 '부검 실시 이전 및 진행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라는 단서가 추가된 것이다.

박 의원은 이 문서를 바탕으로 "국정감사에서 국가 공권력을 집행하는데 당사자들과 협의하면서 할 수 있으나, 부검 시기와 장소를 다 협의하라는 것은 아니라거나 부검 영장 집행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사망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당 의원들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호영 변호사(법무법인 폴라리스)는 부검영장에 부수된 '압수수색 검증의 방법과 절차에 대한 제한' 문서의 성질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해당 문서상의 내용을 위반한 영장 집행의 위법성 여부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만약 위 문서상의 ‘제한’을 영장에 부가된 '조건'으로 본다면, 이는 성질상 부검영장의 '정지조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볼 경우에는 위 제한 조건을 위반한 영장 집행이 불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지조건이란 장래에 어떤 조건이 성립되면 그 때부터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게 하는 조건을 의미하는 법률상 용어다. 따라서 '백씨의 유족들이 부검과 관련해 모든 과정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한다'는 조건을 정지조건으로 본다면, 유족들의 동의 없이 부검 영장을 집행하는 것이 제한 조건을 위반한 집행이 되어 위법한 공권력 집행이 된다는 의미다.

이 변호사는 또 "반면 그 '제한'을 영장과는 별도로 법원이 검찰에 '이행명령'을 한 것이라 해석할 여지도 있다"며 "그렇게 해석한다면 제한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영장 집행도 일단은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영장에 부수한 문서에 적힌 제한이라도 이를 영장의 내용으로 보지 않고, 별도로 법원이 검찰에 이행을 명한 내용이라고 해석한다면 그 내용을 위반하더라도 영장의 집행 자체가 위법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형사 전문 김진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 역시 공개된 영장 부수 문서의 내용이 유족과 수사기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백씨에 대한 부검은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의 '집행'에 관한 문제"라며 "우리 형사소송법(제219조, 제141조 제4항)은 사체(死體)를 해부하는 때에는 예를 잊지 않도록 주의하고, 미리 유족에게 통지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공개된 문서는 유족 측과의 정보 공유까지 의무화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미리 유족에게 통지만 하면 되는 것으로 규정한 데 비해, 공개된 백씨의 부검 영장 부수 문서는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적혀 있어 이 부분이 집행을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인지 견해가 갈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유족 측에서는 수사기관이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단순히 유족 측에 집행할 뜻을 통지만하면 될 것이 아니라, 부검의 구체적인 경위나 경과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줘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렇게 해석할 경우에는 조건을 갖추지 않은 집행이 위법한 수사가 되므로, 그에 따라 획득한 증거 역시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사기관 측은 '영장의 집행은 강제수사의 실행'이라며 집행에 있어 위 문서상의 내용과 같은 유족 측의 동의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관측이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유족 측에 부검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유족 측이 계속 부검을 반대하더라도 영장의 집행으로서 부검을 진행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게 된다.

◇ 법원의 이례적 형태 영장,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또 이날 공개한 문서에는 유족의 의사에 따라 참관 인원의 종류와 수가 정해지도록 돼 있어 이 역시 가족과의 사전합의가 없으면 부검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수사기관이 흘린 대로 간단한 조건만 갖추면 부검을 집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전 과정에서 유족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집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그것이 1, 2차 영장 청구 전 과정을 놓고 종합적으로 해석된 결과"라고 밝혔다.

이호영 변호사는 "법원이 영장발부를 하면서 별도의 이행명령을 하는 것이 과연 무슨 효력이 있나 의문이다"며 "결국 유족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법원이 영장 발부의 '조건'을 기재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설명한 제한 문서의 성질을 ‘정지조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검찰은 문서상의 제한 조건을 반드시 준수해야 적법하게 영장을 집행할 수 있다"며 "조건을 위반한 영장 집행은 위법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봤다.

한편, 이 변호사는 이번 사태에 법원이 굳이 법에도 규정되지 않은 형태의 조건부 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개탄했다. 이 변호사는 "만약 법원이 판단하기에 영장 청구 이유가 충분하다면 영장을 발부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기각을 하면 되는 문제인데 애매한 조건을 달아 영장을 발부한 법원의 태도는 대단히 무책임하다"며 "앞으로 이렇게 논쟁적 영장은 다 조건 붙여 발부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법원의 태도를 비판했다.

5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법원 등 12개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이번 ‘조건부 부검 영장’이 최대 쟁점이 됐다. 영장을 발부한 서울중앙지법 측 증인으로 출석한 강형주 법원장은 "조건 규정이 권고가 아닌 의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며 "일단 영장 부수문서상의 조건에는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4일 서울고검 등의 국감에서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은 원칙적으로 강제 처분을 의미한다"며 영장의 강제력을 강조했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