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물건을 부숴버리거나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만드는 등 명백한 손괴죄도 있지만, 외관은 멀쩡하지만 기능이 달라진 경우 등에는 그것이 물건을 훼손한 것인지 판단하기 애매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물건에 있던 기능만 없앴지만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은 가능했던 경우도 손괴죄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문제돼 대법원까지 갔던 사례(2016도9219)가 있다.

문 설치공사를 하는 업자인 A씨는 B씨로부터 자동문을 설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총 187만원에 시공을 해주기로 했다. B씨로부터 187만원 중 100만원을 계약금으로 받고 시공을 완료한 A씨는 공사를 마쳤음에도 B씨가 잔금 87만원을 지급하지 않자, 한 달 후 B씨로부터 추가로 자동문의 번호키 설치공사를 부탁받은 기회를 이용해 자동문에 자동작동중지 예약기능을 설정했다.

A씨가 설정한 예약기능에 따라 B씨 건물의 자동문은 일주일 후부터 자동으로 여닫히지 않게 됐고, 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수동으로만 문을 여닫아야 했다.

해당 자동문은 자동문의 설치자가 아니면 자동작동중지 예약기능을 해지할 수 없게 돼 있었다.

검찰은 "A씨가 B씨 소유 자동문의 효용을 해쳤다"며 A씨를 재물손괴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A씨가 문을 파괴한 정도에 이르지 않고, 단지 자동 개폐만을 안 되게 한 것이 손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문제됐다.

형법 제366조의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해 그 효용을 해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죄다.

대법원은 자동문을 수동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 역시 손괴죄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물손괴죄에서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는 물질적인 파괴행위로 물건 등을 본래의 목적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경우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물건 등의 구체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효용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포함된다"며 "자동문을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고 수동으로만 개폐가 가능하게 해 자동잠금장치로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한 경우에도 재물손괴죄가 성립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손괴죄는 행위를 한 사람에게 '고의(故意)'가 있을 때에만 성립하며, 과실 손괴죄는 처벌되지 않는다.

따라서 A씨에게 자동문의 효용을 해칠 고의가 있었는지 역시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로 B씨 건물의 출입구 자동문이 일시적으로나마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고 수동으로만 여닫을 수 있게 돼 잠금장치로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초래됐다"며 "A씨에게는 이 부분에 고의도 있다"고 봤다.

그 결과 A씨에게는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인정돼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됐다.

◇ 판례 팁 = 손괴죄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알아둘 점은, 우리 형법이 동물도 생명이 아닌 '재산'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반려 동물은 그 사람이 소유한 재산으로 평가돼 반려 동물을 함부로 죽게 한 사람은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죄에 해당될 수 있게 된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366조(재물손괴등)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