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묵인 및 방조와 세월호 수사방해 등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와 차량에 탑승해 있다.

검찰이 결국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에 실패했다. 우 전 수석은 한숨 돌렸지만, 검찰은 부실 수사 비판에 '제 식구 감싸기'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선 정국과 맞물리며 수면 위로 재부상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검찰 개혁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탓이다.

법원은 12일 새벽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우 전 수석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혐의 내용의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우 전 수석 구속에 실패하면서 개혁의 칼날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우 전 수석 수사 결과가 곧 검찰 개혁의 수위를 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나 마찬가지였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 전 수석이 수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직권남용 의혹부터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알면서 비호·방조했다는 의혹, 아들 병역 비리와 개인회사 자금 횡령 등 개인비리 의혹까지 각종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수사에 돌입한 지 8개월이 흘렀지만, 이번에도 우 전 수석의 범죄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유난히 더뎠던 우 전 수석 수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의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수사 초기부터 우 전 수석의 연수원 동기로 '우병우 라인'이라는 의심을 받는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수사를 맡아 공정성 논란이 일었던데다 소환 조사 당시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후배 검사와 이야기하는 모습까지 사진에 찍혀 비난을 샀다.

검찰과 법무부 수뇌부들이 우 전 수석을 감싸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우 전 수석 비리혐의가 불거진 이후 김수남 검찰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등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검찰은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우 전 수석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검찰과 법무부 수뇌부 등을 조사하지 않았다.

우 전 수석 구속 실패는 검찰 개혁 목소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개혁 방안의 핵심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데 수사권은 경찰에 넘겨주고 기소만 맡는 방향으로 권한을 배분하자는 것이 개혁안의 골자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이 같은 내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혁안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수사권과 기소권의 단계적 분리와 공수처 신설 등을 공약으로 제안했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을 두고 수십 년째 각을 세우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검찰의 승리였다. 검찰의 반대도 있었지만, 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 역시 높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수사권 폐지는 경찰의 수사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경찰 개혁 방안도 필요하다"며 "경찰 권한 중 수사권은 별도 수사청으로 분리하는 등 경찰 권력의 분산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어떤 식으로든 검찰 개혁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수사권 조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번 대선 결과와 정치권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