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전국 각급 법원이 2주간 휴정기에 들어간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원 로고가 보이고 있다. 2024.12.23. kmn@newsis.com /사진=김명년

교무부장 아버지가 빼돌린 답안을 보고 시험을 치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이번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대상인 미성년자에게 직접 영장을 보여주지 않고 부모에게 대신 보여준 것은 위법 절차이고, 이를 통해 수집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재택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최초로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4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현모씨 자매 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자매는 숙명여고 1학년이던 지난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당시 숙명여고의 교무부장이었던 아버지가 빼돌린 답안을 보고 시험을 치러 학교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2019년 재판에 넘겨졌다.

자매의 아버지는 시험 문제와 답안 유출 혐의로 2020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된 뒤 지난해 만기 출소했다.

자매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유죄로 보고 2020년 8월 각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자매가 아버지와 공모해 숙명여고의 학업성적 관리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범행 당시 만 15~16세였던 점 △소년법이 정한 소년으로 인격 형성 과정에 있던 점 △아버지에게 무거운 징역형이 확정된 점 △현씨 자매가 숙명여고에서 퇴학 처분된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하진 않았다.

2심 재판부도 자매가 아버지로부터 시험 정답을 미리 받아 성적이 급격하게 상승했다고 판단했다. 자매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힌 정답 등이 유죄 근거가 됐다. 다만 2심은 자매가 서로 공범이 아니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1심보다 다소 낮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는 자매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가 적법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됐다. 경찰은 현씨 자매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당시, 현씨 자매가 아닌 이들의 아버지에게 영장을 제시했다. 자매의 아버지는 경찰 지시에 따라 딸들이 사용하고 보관하던 휴대전화를 전달받아 경찰에 제출했다.

대법원은 이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현씨 자매가 당시 휴대전화를 현실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었으므로, 경찰이 휴대전화를 압수할 때 현씨 자매에게 영장을 제시했어야 한다"며 "현씨 자매 아버지가 친권자의 지위에서 현씨 자매의 이익을 위해 영장을 제시받았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이 피압수자인 현씨 자매에게 휴대전화의 탐색·복제·출력 등 일련의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으므로 경찰의 압수·수색 절차는 위법하다"며 "경찰이 현씨 자매의 이익을 위해 현씨 자매를 대신해 친권자인 아버지에게 참여의 기회를 부여했다는 사정만으로 현씨 자매의 절차 참여를 보장한 취지가 실질적으로 침해되지 않았다거나 압수·수색이 적법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자매의 휴대전화에 담긴 정보는 위법 수집 증거로서 유죄의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증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대법원은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나머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들만으로도 현씨 자매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미성년자가 압수·수색 처분을 받는 자인 경우, 미성년자가 의사능력이 있는 한 그 미성년자에게 영장제시와 참여권 보장이 돼야 하고, 친권자에 대한 영장제시나 참여권 보장으로 이를 갈음할 수 없음을 최초로 판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