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청탁을 한 후보자를 추천할 목적으로 장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수정한 소방청 간부가 정직 3개월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처분 취소 청구를 냈지만 재판에서 졌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소방청 간부 A씨가 소방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 처분 취소 청구'에서 A씨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징계가 타당하다"고 보고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2021년 행정안전부 장관실에서 파견근무했다. 당시 중앙 119 구조본부장이었던 최병일씨의 소방정감 승진 조력을 청탁받았다. 이에 A씨는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할 소방정감 승진 후보자 명단이 '가나다 순'(최씨는 네번째)으로 올라오자 이를 현 직급(승진일)순서대로 보고하기로 했다. 최씨를 1순위로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당시 신열우 소방청장의 동의를 얻어 명단 순서를 바꾼 보고서를 장관에게 제시했다. 또 장관에게 현 직급 승진일이 누가 가장 빠른지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장관이 최씨 이름 옆에 숫자 '1'을 기재하자 이 사실을 최씨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A씨는 더 과감해졌다. 2021년 4월엔 장관에게 "당시 소방청 차장을 부산 소방재난본부장으로 전보하고, 소방정감 승진자를 소방청 차장으로 임용하는 것이 좋고, 최씨가 그 적임자"라고 보고했다. 장관이 동의한 사실도 최씨에게 전했다. 최씨는 실제로 소방정감으로 승진하고 소방청 차장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A씨는 "차기 소방청장으로 누가 좋겠느냐"는 장관의 질문에 "최씨가 적임자"라고 대답한 뒤 이를 또 최씨에게 알려줬다.

이외에도 A씨는 최씨가 "장관에게 인사 청탁할 사람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하자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장관의 소방정감 후보자 추천 방침, 청와대 인사검증 진행과정, 소방청장 유력후보자들의 세평 자료를 최씨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A씨는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최씨가 소방청 차장이던 시절 A씨는 3년 11개월만에 소방령에서 소방정으로 승진했다. 이는 소방청의 같은 계급 승진연수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빠르다.

이와 관련 A씨는 2023년 9월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처분 취소 청구를 냈다. 최씨를 소방정감 승진자로 보고한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이었을 뿐이란 입장이다. 소방청장 적임자를 최씨로 추천한 것도 업무가 아닌 사적인 대화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일부 인정되는 사실이 있더라도 3개월 정직은 과도한 징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최씨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아 그에 부합하는 내용을 보고하는 것을 정당한 업무 범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이 사실을 최씨에게 전달하기까지 한 것은 개인적인 견해 표명을 넘어섰고,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무원 승진 절차의 공정성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로, 이는 원고 A씨가 실수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한 행위"라며 "원고의 비위행위로 인해 공직기강이 문란하게 된 정도가 비교적 크고, 소방청의 (정직 3개월 징계)재량권이 과도하게 행사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신 전 소방청장과 최 전 소방청 차장은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 위반 등에 대한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