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사진=뉴스1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당사자가 필요한 각종 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무조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당행위가 인정되면 위법성이 조각돼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은 피고인 60대 A씨에게 벌금 7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이라는 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판단하라며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동대표 회장인 A씨는 2020년 6월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및 동대표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사건과 관련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입주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관리사무소에 보관 중이던 입주자 카드를 법원에 증거로 제공했다. 여기에는 세대주, 직업, 차량번호, 가족사항, 세대원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등의 정보가 기재돼 있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 또는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가 개인정보를 제3자 제공, 누설, 유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여기서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를 말한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 등을 의미한다.

재판 당사자가 법원의 제출명령 절차, 수사기관의 영장 등을 거치거나 비식별화 처리를 하지 않고 임의로 개인정보를 제출한 경우 이를 모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로 처벌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수사기관에의 고소·고발 과정 또는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을 위한 자료 제출 과정에서 타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서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유죄라며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2심 법원 역시 유죄 판단을 유지하고 벌금 7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하고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범죄혐의에 대한 방어권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며 "고소·고발 또는 수사절차에서 범죄혐의의 소명이나 방어권의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증거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인 조합에 근무하던 사람이 수사기관에 조합장을 고발하면서 증거자료로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를 경찰에 제출한 행위가 문제된 다른 유사 사건에서도 이같이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