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청사./사진=뉴시스

의학적 전문지식을 갖춘 기관이 필요한 검사를 거쳐 신중하게 진단했고 객관적인 오류가 없다면 가급적 존중돼야 한다며 간암 환자에게 협진 등 없이 약제를 투약했어도 요양급여가 지급돼야 한다는 행정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A학교법인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삭감(조정)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학교법인은 B씨에게 간세포암종의 악성신생물을 진단해 렌비마 캡슐이라는 약제를 처방하고 투여했다. 이후 심평원에 요양급여비용 심사 청구를 했다.

심평원은 B씨는 침습성(염증이나 악성 종양 따위가 번져 인접한 조직이나 세포에 침입하는 성질) 간암이지만 간 외로 암이 전이됐다는 소견이 없고, 국소치료가 불가능한 암환자라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해당 약제 투여는 '암환자에게 처방투여하는 약제에 대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요양급여 327여만원, 의료급여비용 386여만원에 대해 각각 감액 조정 처분을 내렸다.

A학교법인의 병원은 B씨의 암이 림프절로 전이된 게 확인돼 약제를 투여했으며 이는 세부사항에 부합하기 때문에 요양급여비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B씨는 2021년 10월 다른 병원에서 CT검사 결과 간종괴 소견을 받고 A학교법인 병원으로 추가 검사를 의뢰했다. A학교법인 병원에서는 MRI 검사를 실시했고 간암을 의심해 약제를 처방했다. 이런 처방이 요양급여 적용 기준 사항에 벗어나는지가 문제됐다.

대한간암학회에서 발간한 규약집에 따라 보면 B씨는 간외 림프절 전이 소견으로 인해 수술 또는 국소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B씨의 2021년 10월 CT 검사에서 전이 소견이 보였고 조직검사를 통해 간세포암종이 확진됐다. 이런 점을 비춰 볼 때 B씨의 상태는 간암 전이로 판단할 수 있으며 실제로 약제를 투여한 후 커진 림프절이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복강 내 대사활동이 증가된 림프절이 없다고 판독된 것, 림프절은 염증에도 커졌다가 자연스럽게 호전될 수 있는 것 등을 들어 림프절 크기가 줄었다는 사정만으로 전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심평원은 2023년 12월 요양급여 심사에 참고 목적으로 관련 학회에 약제 투여 인정기준인 '수술 또는 국소치료 불가능한 경우'에 대해 판단 요청을 했다. 대한간학회, 대한간암학회, 대한종양내과학회 등은 '국소치료 불가능 여부'는 매우 다양한 환자의 개별적 상태를 모두 반영해 결정돼 일괄해 정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타 진료과와 협의해 국소치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심평원은 A학교법인의 병원에서 다학제 진료(암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전문의들이 협력해 최적의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진료 방식)나 협진을 통해 수술 또는 국소치료 불가능을 판단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봤다.

재판부는 "약제 투여는 세부사항이 정한 인정기준에 부합한다"면서 요양급여 비용 감액 조정 처분은 위법하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수술 또는 국소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라는 인정기준은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판단영역으로 의학적 전문지식을 갖춘 기관이 필요한 검사를 거쳐 신중하게 진단했다면 객관적으로 중대한 오류나 잘못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가급적 존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학교법인의 병원이 약제 투여에 이르기까지 여러 검사와 진단에 객관적으로 오류가 드러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약제 투여에 앞서 다학제 진료 등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