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수천억원대 기업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현 CJ그룹 회장(55)이 파기환송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초 이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법원은 재벌 총수라도 엄격한 법 적용을 해야 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원형)는 15일 이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파기환송되기 전 판결에 비해 6개월 감형받은 것이다.

앞서 이 회장은 6200억여원의 국내외 비자금을 조성·운용하면서 1600억원 상당의 횡령·배임·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기소됐다. 이 가운데는 일본에서 개인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그룹 해외법인인 CJ재팬 등을 보증인으로 세워 회사에 392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포함됐다.

1·2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혐의 중 일부를 무죄로 판단해 각각 징역 4년과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은 지난 9월 이 회장의 조세포탈·횡령 혐의 대부분을 원심과 같이 인정했지만 배임에 대한 가중처벌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같은 대법원 판단을 받아들였다. 배임으로 얻은 이득액을 단정할 수 없는 경우, 가액을 기준으로 가중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아닌 형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에게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같은 무죄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 회장에게는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해 회사에 자신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부서를 두고 합계 251억원의 조세를 포탈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세포탈 범죄는 장기간에 걸쳐 다수의 임직원을 동원해 저지른 것으로 조세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국민들의 납세 의식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또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범죄에 대해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인 회사 제도의 취지를 몰각시킨 것으로 그 중 일부 범행은 이 회장의 개인적 소비나 개인 재산 증식을 위해 저지른 것이라는 점에 비춰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실형 선고 이유에 대해 "조세포탈 범죄나 재산 범죄에 있어 포탈세액을 납부하거나 피해를 회복한 것은 양형상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대규모 자산을 보유한 기업가가 범행이 발각된 후 행한 피해 회복 조치에 양형상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을 조장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이 회장의 건강 문제, 경제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는 것이 경제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했지만 재벌 총수라 하더라도 법 질서를 경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조세를 포탈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면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해 국민에게 공평한 사법체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날 재판 시작 10분 전 정장 차림에 흰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등장했다. 이 회장은 재판부가 입장할 때 변호인들의 부축을 받아 잠시 일어섰다가 앉았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는 눈을 굳게 감은 채 선고 결과를 듣는 모습이었다. 재판이 끝난 뒤 이 회장은 심경과 앞으로의 경영계획 등을 묻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가 나와 당혹스럽다"며 "대법원에 재상고해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당황스럽고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회장은 1심 재판이 진행되던 2013년 8월 신장이식수술을 위해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고 바이러스 추가 감염 우려와 건강 악화를 이유로 그 기간을 계속 연장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이 회장은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둔 지난달 11일 구속집행정지를 추가로 연장해달라고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 회장에 대한 구속집행정지는 내년 3월21일 오후 6시까지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