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장남의 아들, 즉 장손에게 땅을 물려주고 사망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둘째·셋째 자녀의 아들딸들, 즉 다른 손주들은 이 땅의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법원은 '이 땅은 상속과는 상관없다'며 장손의 손을 들어줬다.
민수(가명)씨는 1991년 장남(경수)의 아들, 즉 장손인 철수(가명)씨에게 땅을 줬다. 이후 장남과 둘째, 셋째 자녀들이 민수씨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2009년, 민수씨마저 숨을 거뒀다. 남은 이들은 민수씨의 손자녀들 뿐. 할아버지의 세 자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손주들이 대신 상속(대습상속)을 받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장손인 철수씨에게 준 땅 이외에는 다른 재산이나 빚이 없었다. 둘째·셋째의 자녀들(원고)은 철수씨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18년전 물려준 땅이 유류분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유류분은 법률상 유보된 상속재산의 일부분을 말한다. 누구든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원하는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지만, 일정 부분은 유족에게 줘야한다. 만약 정해진 한도보다 많이 물려줬다면 상속인은 돌려달라고,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사망 후 상속인의 생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즉 상속을 하더라도 일부 재산은 남겨뒀어야 했는데 전 재산인 땅을 철수씨에게 상속을 했으니, 땅의 일부를 돌려달라는 취지의 소송이다.
대법원은 '대습상속인(철수)이 대습원인(경수의 사망) 발생 전에 피상속인(민수)으로부터 증여를 받은 경우 이는 상속인의 지위에서 받은 것이 아니므로 상속분을 미리 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즉, 상속자인 장남이 살아있을 때 장남의 아들인 장손에게 준 땅은 상속을 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유류분의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국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은 온전히 철수씨의 것으로 결정됐다.
상속인(아들)이 피상속인(할아버지)보다 먼저 사망을 하면 그 상속인의 자녀(손자)가 대신 상속을 받는다. 이를 대습상속이라고 한다.
미리 준 재산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있는 재산만 가지고 상속 몫을 정하면 불공평하다. 그래서 남긴 재산과 이미 나눠준 재산을 합해 상속재산을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각 상속인이 받을 몫을 정한다. 만약 미리 받은 재산이 있다면 이는 언제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유류분에 포함된다(대법원 1995.6.30.선고93다11715 판결).
하지만 이 판례는 공동상속인을 전제로 한 것이라서 공동상속인이 아닌 사람(예를 들어 사위, 며느리, 손자)이 증여를 받았을 때는 적용이 안된다.
손자가 증여를 받을 때는 할아버지보다 아버지가 먼저 사망하여 손자가 대습상속인이 되고 나서 받은 것만 반환하면 된다. 즉, 할아버지가 땅을 줄 때 상속인인 아들이 살아있었기때문에 손자는 대습상속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손자가 받은 땅은 상속인의 지위에서 받은 것이 아니기때문에 유류분 산정을 위한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칙적으로 '상속인이 받은 것'만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상속인의 배우자나 상속인의 자녀 등이 받은 것을 상속인이 돌려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증여의 이유, 증여한 물건의 가치, 유언으로 재산을 받은 사람(수증자)과 관련된 상속인이 실제 받은 이익 등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상속인이 직접 받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상속된 것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다(대법원 2007.8.28.자2006스3 결정).
이런 판례의 취지로 볼 때, 이 사건에서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땅을 증여한 상황을 고려해 실제 아들에게 증여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면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되는 재산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원고 측 변호사가 주장을 했어야만 판단해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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