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쯤 중년 여성 A씨가 주택재건축조합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며 사건을 의뢰했다. 언뜻 상대방 조합 측의 주장이 법리상 타당해 보였고, 승소가 까다로워 보였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재건축조합의 조합원인 A씨는 2015년 1월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의뢰인 소유의 토지와 건물을 넘겨주고, 소유권도 이전해달라는 소송을 당했다. 조합은 A씨에게 "재건축조합설립에 동의도 했을 뿐만 아니라 분양신청까지 한 조합원인 만큼 조합에게 집을 넘기고 나가라"고 요구했다.

◇ "조합설립 동의·분양신청한 조합원, 퇴거때 조합에 소유권·점유권 이전해야"

A씨는 당시 새 아파트 분양신청을 하긴 했지만, 억대의 추가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실제 분양계약(분양신청을 한 조합원과 조합이 새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하는 본 계약)을 해야 할지 여부를 고민하던 때였다. 그런데 조합의 소 제기로 의뢰인은 설상가상 집까지 넘겨주고 길거리에 나 앉을 형편이었다.

재건축조합설립에 동의하고 이후 분양신청까지 한 조합원이라면 기존의 주택에서 퇴거하면서 조합에게 그 소유권과 점유권을 이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합이 공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A씨도 재건축조합의설립에 동의했고 분양신청까지 마쳤기 때문에 사실 조합의 주장이 법리상 타당했다. 때문에 A씨가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A씨가 상담한 몇몇 변호사들도 조합에 집을 비워줄 수밖에 없다며 패소를 예상한 것으로 전해들었다.

◇ "늑장 사업진행한 조합…소유권 이전등기·인도 청구는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

하지만 '조합 정관'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 조합의 정관은 조합원이 분양계약 기간에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기존 주택의 시가에 해당하는 현금을 청산받고 조합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을 뒀다. 그럼에도 조합은 분양신청 절차가 진행됐던 2013년 이후 2년이 다 되도록 분양계약 공고를 하는 등의 후속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런 조합의 늑장 사업진행으로 A씨의 지위는 매우 불안해졌다. 조합이 분양계약 절차를 진행할 때까지 아무런 기약없이 기다려야만 해서다. 게다가 조합이 분양계약절차 진행 이전에 이주철거를 진행해 A씨는 집값을 현금으로 청산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날 상황에 놓였다.

재판 과정에서 "조합의 행태는 민사법의 대원칙인 민법 제2조 제1항 '신의성실의 원칙(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에 위반된다"며 "조합의 소유권 이전등기 및 인도 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변론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의뢰인이 여전히 조합원에 해당하지만, 조합이 관리처분변경계획 인가 이후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분양계약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의뢰인들이 현금청산자가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며 "A씨의 청구는 신의칙에 위반된다"라고 판단해 조합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A씨가 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결국 A씨는 조합이 분양계약절차를 진행할 때 현금청산자가 돼 정당한 집값을 받을 때까지 기존에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