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인 (주)급등제약을 운영하고 있는 김시세(가명), 박조종(가명)씨. 개발하고 있지도 않은 신약이 임상실험에 성공했다며 곧 국내 시판예정이라고 허위 정보를 시장에 유포했다. 이를 믿은 무작정(가명)씨는 급등제약 주식을 주당 1만5000원에 1000주를 매수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약개발은 거짓'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급등제약 주식은 급락하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무작정씨는 주당 5000원에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결국 1000만 원의 손해를 입었다.

무작정씨는 김시세와 박조종씨를 상대로 자신이 입은 손해액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김시세와 박조종씨는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제약시장 자체가 대세 하락장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무작정씨의 손해부분은 1000만 원이 아니라 500만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과실상계를 활용한 추상적 감액결정"

우리 법원은 과거에도 허위 공시 등 회사의 위법행위가 아닌 경제·산업 전반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한 '자연적'인 주가 하락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자연적 주가 하락 등에 해당하는 부분은 원고의 손해배상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분명히 하면서도, 성질상 손해액을 일일이 증명하는 것은 곤란하므로, 이 경우 손해분담의 공평의 이념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추상적이다. 또 감액을 해주지 않더라도 피고 측에서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이 경우 소송을 당한 피고의 입장에서는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의 범위를 특정해서 적극적으로 감액 주장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우리 법원에서도 이러한 '인과관계 있는 손해의 범위'를 객관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법원 'event study'로 인과관계 있는 손해배상액 범위 산출

대법원은 '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11621' 판결(원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13. 1. 10. 선고 2010나84682 판결)에서 경제학에서 흔히 쓰이는 이론인 '사건연구방식(event study)'을 재판에 도입했다.

허위사실 유포, 허위 공시 등이 없었을 경우의 정상주가를 산출하고, 위법행위로 형성된 주가로 투자자가 주식 취득을 위해 실제 지급한 금액과 정상주가의 차액을 인과관계 있는 손해배상으로 특정했다.

이에 따른다면, 김시세와 박조종씨는 제약시장 자체의 주가 하락으로 인한 무작정씨의 손해 부분을 분리해 1000만 원보다는 낮은 선에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낮아질지는 전문가의 감정 결과를 따를 수 밖에 없다.

'객관적·중립적' 감정 이뤄져야…'비용·기간'이 문제

위와 같은 사건연구방식을 재판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전문인의 감정이 필수 요소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와 관련한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이나 감정인이라고 생각할 만한 전문가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법원은 회계법인이나 회계학·통계학·경영학과 등 관련 분야 교수 등 원·피고의 추천을 받아 감정인을 선정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인 채택 방식은 감정 비용만 해도 수천만원에 이르고 감정결과가 나오는데도 약 6개월 정도 걸린다. 피해 금액이 작은 투자자는 비용 부담 때문에 감정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또 재판에서 좋은 감정 결과를 받기 위해 원·피고가 사전에 사설 감정을 의뢰하거나, 막대한 비용을 들인 감정 결과에도 불만을 가진 일방 당사자가 재감정을 요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2개의 감정 결과가 완전히 상반되게 나오는 등 감정과 관련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법원에서는 증권 소송에 대해서는 감정 자체를 꺼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주식거래에 대해 가장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있는 한국거래소와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했다. 이후 한국거래소는 경영학과 교수 등 10명으로 구성된 '손해액 법원감정 자문위원단'을 꾸려 감정업무를 시작했다.

'손해액 법원감정 자문위원단'은 한국거래소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양의 증권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감정에 들어가는 비용도 공익 차원에서 실비만 받고 있다. 감정 기간도 3개월 정도로 기존의 감정 기간의 절반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증권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손해액을 산정할 때 '단순선형회귀분석(linear regression and correlation)'과 '사건연구방식' 등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감정결과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손해액 법원감정 자문위원단'을 잘 활용한다면 증권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건설·의료 관련 소송에서와 같이 감정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사에서는 적극 도입·형사는 아직…

2014년 6월12일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한국거래소는 금융투자 및 증권거래와 관련해 발생하는 분쟁을 예방하고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서 말한 '손해액 법원감정 자문위원단' 또한 적극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필자 또한 이러한 노력에 일조할 생각이며, 한국거래소 또한 신뢰할 수 있는 감정기관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여 증권관련 소송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참고로 우리 자본시장법은 위와 같은 불공정거래행위로 얻은 이익액에 따라 가중된 형벌을 가하고 있는데(자본시장법 제443조), 이러한 '사건연구방식'를 활용하는 것은 우리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데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사소송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과 달리, 형사소송에서는 신속한 재판의 필요성, 엄격 증명의 원칙 등의 문제로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도형 변호사는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연수원 34기)에 합격했다. 한국증권법학회 이사, 금융보험법연구회 간사 등 금융·증권·자본시장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겸임교수(금융법실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