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화 변호사/사진=이기범 기자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숱한 피해자들이 국가와 가해업체를 상대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촉구했지만 검찰 수사는 지난해부터야 본격화됐다. 그 기간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던 피해자들 곁에서 힘을 실어온 한 사람이 있다. 최근 피해자들이 국가와 가해업체들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의 대리인단장을 맡은 황정화 변호사(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다.

"하루빨리 피해자를 가정으로 보내드리고 싶어요"

황 변호사가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의 피해자 안성우씨를 두고 한 말이다. 이는 그가 이번 집단소송 대리인단장을 맡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안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아내와 뱃속의 태아를 잃었다. 첫째 아이는 3등급 판정을 받았고 본인과 어머니도 피해를 접수해 놓은 상태다. 집은 부산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그는 혼자 서울에 와 고시원에서 지낸다. 직장도 그만두고 부산에 홀로 아이를 남겨놓은 채 검찰청 앞 시위, 옥시 앞 철야 농성 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힘든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황 변호사는 "안성우씨처럼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국가와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며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고 했다. 3·4등급 판정을 받아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 세퓨처럼 도산한 업체의 제품을 사용한 경우, 여러 업체의 제품을 혼용한 경우 등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피해자 개개인이 이를 스스로 입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에서 활동해 온 황 변호사는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건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환경보건 분야 소송의 피해자들을 대리했다. 그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자들을 대리하며 관련 법이 미비해 환경 소송 피해자들이 배상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환경보건 사건의 피해자들은 열악한 처지인 경우가 많다. 시멘트공장, 송전탑, 원자력발전소 등 유해시설이 설치되는 지역은 대부분 낙후지역으로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다. 그는 "이미 건강상 피해를 입은 상태라 적극적으로 대응할 힘도 정보도 부족하다"며 "소송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 가해 회사 회유에 쉽게 넘어가는 경우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황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법 제도는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구제하기에 한계가 있다. 폐 손상 등의 호흡기 질환의 경우 노동력 상실률을 계산할 수 있는 체계가 없어 재산피해에 대한 감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2~30년간 시멘트 분진을 흡입해 진폐증을 앓게 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몇 백만원 배상으로 소송이 끝나기도 했다. 다수의 피해자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워 소액의 배상으로 소송을 끝내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 변호사는 "지금까지 환경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 적은 없었지만 이번엔 다르길 바란다"며 "제가 힘을 싣고자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40명에 달하는 변호사들이 이 한 사건을 위해 모인 것은 일부라도 구제받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국가와 기업 양측으로부터 피해자 전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이끌어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