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구(가명)씨는 네 명의 자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준구씨가 남긴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4억원이 든 예금통장. 장녀인 민영(가명)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이 예금을 두고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소송을 냈다.

아들인 민수(가명)씨와 민철(가명)씨는, 예금채권은 나눠 가질 수 있는 '가분적 금전채무'로 준구씨가 사망하면서 상속이 개시되자마자 공동상속인에게 나눠지고, 실제 상속인 지분별로 공탁돼있는 상태이기때문에 상속재산분할 청구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수, 민철씨가 말한 것처럼 예금은 법정상속분에 따라 나눠가질 수 있는 재산이다. 그런데 민영씨는 왜 소송을 제기한걸까.

'예외적'으로 예금도 상속재산분할 대상될 수 있다

대법원의 판결문에 답이 있다. 대법원은 "예금채권과 같이 나눠가질 수 있는 재산이 공동상속되는 경우 당연히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분할되니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그러나 가분채권을 무조건 상속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면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부당한 결과로 공동상속인들 중 '초과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를 들었다. 초과특별수익자는 이미 법으로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받아서 상속받을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만약 예금 등 가분채권을 상속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하면 초과특별수익자는 이미 받은 재산은 그대로 두고, 가분채권은 법정상속분대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추가로 더 상속을 받는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 준구씨는 생전에 두 아들인 민수, 민철씨에게 각각 51억원, 20억원의 재산을 미리 물려줬다. 딸인 민영씨에게는 1억8000만원을 줬고, 민지씨에게는 한푼도 미리 주지 않았다.

만약 4억원의 예금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 4명의 자녀는 법정상속분대로 나눠갖게 된다. 민수, 민철씨는 미리 받은 재산이 많지만, 이는 그대로 두고 추가로 예금을 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금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면 다른 재산과 생전에 미리 받은 재산 등을 고려해 나눠갖게 된다. 민수, 민철씨는 이미 받은 재산이 법정상속분보다 많아서 예금까지 더 받기는 힘들다.

대법원은 "특별수익이 있거나 기여분이 인정돼 구체적인 상속분이 법정상속분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상속재산으로 가분채권만 있는 경우 모든 상속재산이 법정상속분에 따라 승계된다"며 "이는 수증재산과 기여분을 고려해 상속을 받도록 해 공동상속인 사이의 공평을 도모하려는 민법 제1008조, 제1008조2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또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상속재산분할을 통해 공동상속인들 사이 형평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가분채권도 예외적으로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공평한 상속위해 '초과특별수익자' 있다면 예금도 상속재산

상속재산을 나누기 위해서는 분할에 참여할 '상속인'과 분할대상이 되는 '상속재산'의 범위를 확정하고 평가해야 한다. 가분채권이 상속재산이 되는지를 두고 견해가 나뉜다. 판례에 따르면 가분채권은 당연히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에게 나눠지니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2006. 7. 24. 선고 2005스83 결정 등).

그러나 상속인 중 초과특별수익자가 있을 경우 가분채권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면, 초과특별수익자는 가분채권의 일부를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상속재산이 가분채권밖에 없을 경우 특별수익자는 상속을 더 받을 수 있지만, 기여자는 기여분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불공평할 수 있다. 특별수익이나 기여분 등을 고려해 법정상속분의 재조정이 이뤄져야 하는 경우 공동상속인들 사이 형평성을 위해 가분채권을 분할대상인 상속재산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이유로 상속인 중 초과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 가분채권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는 하급심 결정들이 있었다(서울가정법원 2005.5.19.선고2004느합152 결정 등). 이 사건은 이를 대법원이 처음 채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사건의 경우 가분채권인 예금이 상속재산의 전부다. 또 공동상속인들 중 초과특별수익자가 있다. 공동상속인들의 실질적 형평을 위해 이를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옳다. 판례에 찬성한다.

예금채권이 변형된 재산도 분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상속개시 당시에는 예금채권이 있었지만, 상속재산분할 당시에는 그 예금채권이 제3자에 대한 구상권, 공탁금출급청구권, 부당이득반환채권 등의 형태로 변형됐다. 이런 경우에도 예금채권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예금채권을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아 분할했다. 그러나 상속재산분할 대상이 되려면 분할 당시에 그 재산이 상속재산으로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나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예금채권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종래의 상속재산인 예금채권이 변형된 구상권, 공탁금출급청구권, 부당이득반환채권을 상속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상속개시 때부터 상속재산분할 때까지, 그 사이에 상속재산의 매각대금, 멸실이나 훼손에 따른 손해배상금 또는 보험금, 수용보상금 등 상속재산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형태가 변형된 대상재산도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소위 '대상재산(代償財産)'이론이다.

상속인 사이의 공평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대상재산도 결국은 가분채권이다. 당연히 공동상속인들에게 분할되는 것이어서 원칙적으로는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사건처럼 공동상속인들 중 초과특별수익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대상재산도 상속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봐야 한다.

대법원도 "상속개시 당시 상속재산이던 것이 그 후 처분되거나 멸실, 훼손되는 등 상속재산분할 당시 상속재산이 아니게됐다면 그 재산은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상속인이 그 대가로 처분대금, 보험금, 보상금 등 대상재산을 취득한 경우, 대상재산은 형태가 변경된 것에 불과하고 상속재산분할의 본질이 재산을 공동상속인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데 있는 점에 비춰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대상재산이론을 명시적으로 채택한 최초의 판결인 것으로 보인다. 어느 모로 보나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상훈 변호사는 43회 사법시험(연수원 33기)에 합격했다. 고려대에서 친족상속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상속법과 신탁법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주로 가사·상속·신탁·가업승계 등을 전문분야로 가족간 가족기업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이슈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