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악화 등으로 40일간 입원했던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달 18일 퇴원해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법정대리인) 지정이 임박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10일 '신격호 총괄회장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 관련 심리를 모두 마쳤다. 이날 심리에는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한 신 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의 법률대리인과 후견인 지정에 반대하는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부회장 측 법률대리인 참석해 신 회장의 치매약 복용과 관련해 열띤 공방을 펼쳤다.

법조계는 심리가 모두 끝난 만큼 심리 결과는 이르면 이달 안,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후견인 지정에 따라 신 회장의 향후 거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신 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성년후견제도가 뭐길래…'치매약 복용'이 왜 문제되나?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성년후견인 제도'는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것으로, 역사가 길지 않다. 성년후견인제도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에 대해 법원이 그 사람(피후견인)의 의사를 대신할만한 후견인을 선임해 그의 재산관리와 일상생활에 관한 폭넓은 보호 및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로써 민법에 도입됐다.

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청조)는 "과거에는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로 운영됐던 내용이 2013년 민법 개정으로 '성년후견제'로 바뀌었다"며 "본인이나 친족, 또는 검사의 청구에 따라 진행되는 후견인 제도는, 법원이 본인의 ‘정신적 제약’으로 인한 사무처리능력에 어려움이 있는지를 확인한 후 본인의 의사에 따른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이를 돕는 적정한 후견인을 선정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김연기 변호사(법무법인 세인)는 "후견제도로는 크게 미성년후견제도와 성년후견제도가 있고, 성년후견제도는 다시 (좁은 의미의)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및 임의후견제로 나눌 수 있다”며 “이번 롯데그룹 신 회장의 경우는 그의 정신적 제약 상태가 문제되고 있어, 그것이 인정된다면 이 중 어느 하나의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법에 따르면 성년후견인을 지정해달라는 신청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청구할 수 있도록 돼있다. 따라서 신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을 그의 넷째 여동생이 청구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 법 전문가들 "성년후견인 지정될 가능성 높다"

성년후견인 지정 심판의 결과를 앞두고 법조계는 여러 정황에 미루어 신 회장에게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가능성이 많다고 관측하고 있다.

강성민 변호사는 "신격호 회장이 수년째 치매약 ‘아리셉트’를 복용하고 있으며, 관련 치료 및 복용 기록이 법원에 제출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서도 예방목적이었다고는 하나 신격호 회장의 치매약 복용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신격호 회장에게 '정신적 제약'으로 인한 사무처리능력에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되어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강 변호사는 또 "성년후견제도는 후견대상자의 정신적 제약 정도에 따라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등으로 나뉘는데, 이 경우 신격호 총괄회장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능력의 지속적 결여'가 있다고 보아 성년후견에 해당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지속적 결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무처리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정되어 한정후견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기 변호사 역시 "성년후견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이에 그 심판 결과를 예측할 자료가 없어 전망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언론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이 2010년부터 복용해 온 것으로 알려진 '아리셉트'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및 뇌혈관 질환을 동반한 혈관성 치매의 치료에 쓰이는 약이고, 다른 형태의 치매 또는 기억력 장애에 대하여는 사용 승인이 되지 아니한 점,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경우 경미한 기억장애만을 보이는 초기단계에서부터 의미 있는 대화가 불가능해지는 점, 위 약의 복용기간이 장기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후견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 성년후견인 지정 결정으로 롯데家 경영권 분쟁 장기화 될 수도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도, 그것이 롯데家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 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법 전문가들은 신격호 회장에게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경우 신동빈 회장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도, 그것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반격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성민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14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윤사가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개최해 신동빈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을 신격호 회장을 대신하는 새 대표로 선임했는데, 이 같은 결의는 그것이 신격회 회장의 의사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올해 1월, 신동빈 회장이 위 결의가 효력이 없다는 소송을 일본 법원에 제기했는데,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경우 일본 법원으로서는 신격호 회장이 당시 ‘정신적 제약’이 존재했다고 보아 신동빈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대표이사직과 광윤사 최대 주주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에는 이를 시작으로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결의를 비롯한 경영권 분쟁에 있어서도 신동빈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김연기 변호사는 "신격호 회장의 성년후견인이 결정될 경우 성년후견인은 신격호 회장의 법률행위를 대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한 롯데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 및 위임 역시 가능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가정법원이 이런 의결권의 행사와 위임과 관련해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형태로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의 범위를 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만약 가정법원이 성년후견인의 권한 범위를 정한다면 성년후견인에 의한 신격호 회장의 의결권 행사나 위임이 이뤄지는 방법으로 롯데家 경영권 분쟁이 정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신동주 전 부회장이 주장하는 신격호 회장으로부터의 경영권 위임이 유효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다른 분쟁 절차에 의해 경영권 분쟁이 정리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누가 성년후견인 될지도 오리무중…"신격호 의사 존중해 신동주 지정될 수도"

한편, 성년후견심판청구가 인용된다고 하더라도 성년후견인이 누구로 지정될 지는 별개의 문제다. 현재 신 회장의 성년후견인 후보자로는 그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맏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막내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이 거론되고 있다. 때문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후견인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성년후견인 지정 결정이 신동빈 회장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가정법원은 성년후견인을 선임할 때, 피성년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피성년후견인과의 이해관계의 유무 등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데, 신격호 회장의 의사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성년후견인이 되길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 사이의 이해관계가 대립된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성년후견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면서 "만약 신동주 전 부회장이 성년후견인으로 결정되면 심판청구인인 신정숙씨의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결과가 발생할 여지 역시 있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