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국세에 대한 쟁송은 필요적 전치주의를 채택해, 국세청장에 대한 심사청구 또는 조세심판원에 대한 심판청구 중 택일해 구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반행정소송과 달리 조세불복에 필요적 전치주의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①조세에 대한 처분은 대량적,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②쟁점이 사실 인정에 관한 것이 많아 간이하고 신속하게 처리돼야 할 요청이 강하며 그 대부분이 전심절차에서 비교적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점 ③과세관청에 대해 자기시정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 ④조세법규의 해석은 전문적, 기술적 성격을 가진 것이 많아 전심단계에서 논점을 정리하고 해석작용의 통일을 도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 등에 있다.

그러나 조세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국세청장에 대한 심사청구와 조세심판원에 대한 심판청구 중 어느 하나를 거쳐야 하는 필요적 전치주의는 납세자의 권리보호 측면에서 볼 때 큰 문제가 있다.

심사청구에 대한 결정을 하는 국세심사위원회와 조세심판청구를 결정을 하는 조세심판원은 과세관청에 대한 독립성이 보장돼 있고, 법원 못지 않는 조세분야의 전문성까지 갖추고 있으나, 과연 그 권한행사에 있어서도 실질적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심사청구와 심판청구를 통한 필요적 전치주의는 과세관청에게 일종의 자기시정의 기회를 주지만, 상당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납세자가 권한의 독립성이 확실하게 보장된 법원의 사법심사를 받을 수 있는 시기를 지연시켜 결국 납세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막고 헌법상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현행법상 심사청구나 심판청구의 결정기간 90일 이내에 결정의 통지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결정통지를 받기 전이라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행정소송이 제기된 경우 심사청구나 심판청구는 법원에 행정소송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사실상 충실한 심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심사청구나 심판청구에 이미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납세자로서는 심사청구나 심판청구를 쉽게 포기해 버리고 행정소송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법원에 곧바로 조세소송을 제기할 것인지 아니면 국세청장에 대한 심사청구나 조세심판원에 대한 심판청구를 거진 후 조세소송을 제기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민에게 그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필요적 전치주의를 통해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법원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궁극적인 이유 역시 법원으로 하여금 충실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라는 것에 있다. 필요적 전치주의가 오히려 국민의 권리보호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이를 임의적 전치주의로 변경해야 한다. 법원의 업무 부담은 필요적 전치주의를 통해 해소할 것이 아니라 인력 확충과 법원의 전문화 등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임의적 전치주의를 채택함으로써 납세자가 심사청구나 심판청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조세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헌법상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납세자의 권리를 보다 충실하게 보호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조세 선진국으로 가는 또 하나의 지름길이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는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31기로 수료한 후 화우에 입사했다. 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 분야다. 그 동안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관세 등 전 세목에 걸쳐 다수의 조세쟁송과 자문사건을 수행했다. 강남세무서, 서대문세무서 등에서 외부위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