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요직에도 법조인을 중용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황찬현 감사원장, 황우여 전 부총리,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유기준 전 해수부 장관,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 박준우·김재원 전 정무수석 등이다. 업무성격상 법조인이 맡는 게 관례인 민정수석은 곽상도, 김영한, 홍경식, 우병우에 이어 최재경 현 수석까지 모두 검사출신이다.

◇고위 관료 법조인들…최순실 불법 국정농단 모른 체 했나

이러한 법조인 우대 혹은 돌려막기를 이제까지는 박 대통령이 평소 '법과 원칙'을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 대다수가 공분하는 상황에서도 같은 평가가 가능할까.

법조인들을 중용한 이유가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성향때문이 아니라 상명하복에 철저하고 입조심을 하며 바른 소리를 내기보다 튀지 않으려는 법조인 특유의 폐쇄성과 보수성을 고려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한발 더 나아가 법조인을 중요 보직에 배치한 결정권자가 혹시 대통령이 아니라 국정농단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는 아니었을까라는 의심도 자연스러울 정도다. 장관급 인사에도 개입할 정도였다면 법조인들을 청와대와 각 부처에 꽂은 이가 최씨가 아니란 법도 없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현 정부에 법조인이 많은 이유에 대해 사석에서 "우리나라에서 애국심이 강하고 일도 잘하는 유일한 집단이 법조인 집단"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과연 그럴까. 나라 걱정도 많이 하고 일도 잘 한다는 그들이 왜 최씨의 국정농단은 몰랐고 혹여 알더라도 모른 체 했을까.

법조인 중용은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됐던 일이다. 소위 '육법당(陸法黨)'이란 비아냥이 거기서 나왔다.·육사와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권력 요직을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신직수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엘리트 법조인들이 권력 핵심을 장악하고 정권을 지탱해줬다. 독재를 정당화한 1972년 유신헌법도 그들 손에서 나왔다.

◇최순실 못 막은 법조인 관료들…위계질서 따르는 폐쇄적 보신주의 문제

역사는 반복됐다. 부친 인사스타일을 따라간 듯한 박 대통령은 '육법당 3.0' 버전을 썼다. 주로 서울대 법대 출신인 주류 법조인들을 지나치게 우대했다. 과연 그 법조인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법의 지배'를 위해 헌법을 따르고 법률을 존중했을까.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던 듯 하다. 오히려 법조인 특유의 위계질서와 폐쇄주의 그리고 보신주의가 화를 불렀다. 최씨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대부분의 법조인 출신 관료들이 최씨를 몰랐다고 하지만 그렇게 믿기는 힘들다. 

솔직한 화법을 즐겨 쓰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최순실 존재 몰랐다면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대표 말대로 법조인 출신 고위 관료들이 최씨 존재와 전횡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면 그들은 비법조인 관료들보다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최소한 법률가라면 준법에 더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법조인을 우대하는 전통이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법시험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은 이들에 대해 '성공 신화'를 부여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런 사회적 우대에는 법조인들이 우리 사회에 큰 역할을 할 소중한 인재라는 기대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현 정부 고위직에 오른 법조인들은 우리 기대를 저 버린 셈이다. 법률가라면 '법의 지배'를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 '법'이 아니라 '최순실의 지배'를 목격하고도 침묵했다면 법조인 자격이 없다.

◇'법의 지배'는 법률가 책임…사회적 우대받아 온 법조인들 '공익'봉사의무 잊어선 안돼

최소한 '법치'와 '법준수'는 법률가 출신들의 몫이고 책임이다. 그들은 기업에서처럼 정부에서 일종의 '준법감시인' 역할을 했어야 한다. 회계감사가 부실했다면 회계사가 징계받는다. 최씨의 전횡이 청와대와 각 부처를 썩어 문드러지게 할 동안 준법감시 역할을 제대로 못한 법조인 출신 고위직들은 과연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 대해선 비법조인들보다 더 엄한 처벌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법조인들에게 유난하리만큼 우대하고 기대를 하는 이유를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좋은 학교를 나와 어려운 사시를 통과했으니 그 정도 대접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큰 일이다.

영화 '부당거래'엔 검사 역할인 배우 류승범의 명대사가 나온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국민들이 법조인들에게 그간 호의가 너무 과했나 싶다. 그렇다면 이젠 국민들은 법조인에 대한 그간의 존경과 찬사 그리고 호의를 거둬들일 준비를 할 때다.

이제껏 법조인을 충분히 우대하고 존중했다. 그들이 사익(私益)이 아니라 공익(公益)에 봉사할 것을 약속한 법률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믿음에 더 이상 배신을 하지 않으려면 고위직에 오른 법조인들은 국민을 우대하고 공익을 더 염두에 두고 일할 때가 됐다. 그들의 상전(上典)은 최씨가 아니라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