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기도 하고 개인의 민감한 정보들이 오가기도 하는데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을 수 있는 법정 모습을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재판 공개는 모든 법의 근간인 헌법이 정해두고 있는 원칙입니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못박아두고 있습니다. 다만 법원 결정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할 수도 있는데요. 헌법은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법원 결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성범죄나 미성년자 사건 등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헌법이 재판을 공개하도록 정해둔 이유는 투명한 절차를 보장해 당사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 김기두 서울대 법대 교수는 한 신문 칼럼에서 재판 공개주의에 대해 "과거 전제군주시대 군주의 전단적인 재판 방법이었던 비밀주의에 반항하여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찾으려는 민주혁명의 빛나는 소산"이라고 표현하며 "공개주의의 근본정신은 국민대중의 면전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이는 국민정의에 합치되는 공정한 형사재판을 보장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재판을 방청하는 이들의 엄중한 책임도 강조했는데요. 김 교수는 "방청인은 국가재판의 공정 여하를 감시하는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중대한 의의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며 "방청은 절대로 국가가 국민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구경감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주장이 담긴 김 교수의 칼럼은 무려 60여년 전인 1955년 한 신문에 실렸습니다. 김 교수는 당시 왜 이런 칼럼을 썼을까요? 당시 희대의 성추문 사건으로 재판이 열리면서 수많은 이들이 방청을 위해 법원에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명 한국판 카사노바로 불리는 '박인수 사건'인데요. 해군 헌병 대위로 복무하다 전역한 박인수씨는 헌병 대위를 사칭하면서 서울의 고급 댄스홀을 출입, 70여명의 젊은 여성을 유혹해 간음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박씨가 혼인을 빙자해 자신들을 농락했다고 피해를 호소했는데요. 

1심 법원이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며 공무원 사칭죄만 유죄를 선고하고 혼인빙자간음죄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또다른 논란이 일기도 했던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후 2심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죠. 정조를 생명처럼 여기던 시절 이 사건은 순식간에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재판이 열리는 내내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대학 교수는 학생들을 인솔해 공판을 방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이같은 세태를 비판하며 "형사피고인이라도 인간으로서 권리와 자유와 명예가 보호돼야 한다. 피해자의 명예는 특히 보장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안이 마련돼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3에 따라 피해자·법정대리인 또는 검사의 신청에 따라 피해자의 사생활의 비밀이나 신변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심리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