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성매수남을 유인하는 채팅창.(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경찰서 제공

서울 공원에서 여성 청소년을 가장해 이른바 '조건 만남'으로 40대 남성을 유인해 칼로 위협하고 폭행해 금품을 뺏었던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법정에서 서로 범행 책임을 미뤘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이들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폭행을 시작했고 피해 남성을 심하게 때렸다며 자신의 폭행 가담 범위를 줄이기 위해 법정서 대립했다.

검찰 공소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서초구 송동근린공원에서 40대 남성을 때리고 금품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검거된 A(16)군과 B(16)군은 트위터를 통해 성매매 광고를 한 뒤, 연락해온 40대 남성 C씨를 자택 인근으로 불렀다.

범행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친구였던 이들은 서초힐스아파트 단지 산책로에서 C씨를 만나자마자 수회 얼굴 때리면서 "돈 내놓아라" "천만원 주면 그냥 가겠다"고 협박하면서 칼을 목에 들이대고 목을 조르며 흔들었다.

C씨가 이들의 폭행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이정도로 안 죽는다"면서 다시 얼굴을 발로 밟고, 벗겨진 C씨의 슬리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이들은 C씨 소지품을 뒤졌으나 지갑을 찾지 못하자 "차 지금 어딨어? 차에서 돈 가져갈게"라며 정신을 잃은 C씨가 떨어트린 자동카키를 빼앗았다. 이들은 자동차키로 잠금해제를 시도하면서 돌아다니다가 근처에서 주차된 차를 찾지 못하자 다시 돌아와서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던 C씨를 공원안에 있는 양재천 지류 개천까지 끌고 갔다.

이후 더 폭행하던 이들은 차를 찾지 못하자 시가 90만원 상당의 C씨의 휴대폰과 자동차키 그리고 슬리퍼를 빼앗고 정신을 잃은 C씨를 개천에 버려둔 채 달아났다. 2시간여 뒤 깨어난 C씨는 인근 주유소에 경찰 신고를 요청했고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

A군과 B군은 경찰이 인근 CCTV 분석 등으로 수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범행 사흘 만에 변호사를 각자 선임해 경찰에 자수했다. 당시 경찰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들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란 점을 감안해 "증거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법정에 나온 이들은 "(친구가 갑자기 폭행을 시작해서)겁먹어서 멍때리고 가만히 있었다", "개천 밑으로 끌고 갔을 때 같이 안 끌고 갔다", "중간에 생수를 사러 갔다 왔더니 친구가 혼자 15분간 때렸다" 는 등 자신의 범행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이들이 법정에서 서로 범행 가담 정도를 다르게 주장함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서로에 대한 증인으로 증인석에 세워 신문을 통해 구체적 사건 내용을 파악하기로 했다.

범행장소인 송동근린공원/사진=네이버 지도

이날 재판장은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한 이들에게 다음 공판기일을 잡기 위해 "학업이 많이 바쁜가? 오후시간에 다음 기일을 잡는게 어떤가? 학원 다니냐?"고 묻기도 했다. 검찰 기소내용에 따르면 폭행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알려진 B군은 "화목토만 빼고 나머지 요일엔 학원에 다닌다"고 답했다.

A군은 B군이 혼자 폭행하는 광경을 영상통화로 목격했다는 강원 강릉에 사는 친구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A군이 생수를 사러 간 사이 B군이 영상통화까지 해서 강릉에 사는 친구에게 폭행장면을 보여줄 정도로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자신은 거의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소년이기 때문에 소년사건조사를 해야한다"며 "이 사건은 워낙 법정형이 높은 범죄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심리할 수 밖에 없다.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소년사건조사부 조사에는 4~8주가 걸린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에게 "법원 직원의 소년조사 관련 전화가 오면 안내에 충실히 답하고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재판장은 다음 기일을 잡기 위해 피고인들의 '중간고사' 기간도 확인했다. 중간고사가 4월 말부터라고 답하자 재판장은 5월12일 목요일 오후로 다음 공판기일을 잡았다.

한편 A군과 B군은 성매매 관련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실제 여성 청소년이 가담한 형태의 성매매가 아니라 처음부터 '허위'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C씨도 마찬가지로 '성매매 미수'로 기소당하지 않았다. 성인에 대한 성매매 미수는 처벌이 안 되고 미성년자에 대한 성매매 미수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지만, 사건 자체가 '성매매 미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A군과 B군은 만 16세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다만 미성년자기 때문에 소년법이 적용돼 형사처벌로 교도소행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일반 교도소가 아닌 소년교도소에 수감된다. 아울러 범죄를 저지른 소년과 보호자 또는 참고인의 품행, 경력, 가정 상황, 그 밖의 환경 등을 조사해 형사 처분이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소년법에 의해 보장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