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을 비롯한 증인들이 각각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사진=헌법재판소 제공

12·3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돼 내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 고위 관계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회 봉쇄·체포조 운영 의혹과 관련된 대부분의 증언을 거부했다. 자신들의 형사 재판에서 내란 관련 쟁점들이 다뤄질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증언을 했다가 불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전날 헌재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회 측 대리인단의 질문에 대부분 증언을 거부했다.

이 전 사령관은 "세 번째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느냐" 등 자신의 공소장을 바탕으로 한 국회 측 여러 질문에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 전 사령관이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를 봉쇄하고 윤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듣고 이를 이행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 전 사령관도 체포조 관련 증언을 피했다. 여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14명의 체포 명단을 받은 사실이 있냐"는 국회 측 질문에 "형사 재판에서 답하겠다"고 했다. 또 "(김 전) 장관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을 이해해서 부하들에게 얘기한 것"이라며 "부하들 각각에게 지시사항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해한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형사재판 관련 부분이라 자세히 진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사령관이 증언을 사실상 거부한 이유는 헌재에서 체포조 및 국회 봉쇄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했을 경우 추후 있을 형사재판에서 자칫 이들에게 내란 목적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령관은 현재 피고인 신분이다. 이들이 탄핵 심판에서 본인들 형사재판에 불리한 사실관계를 인정하거나 기존 진술을 번복한다면 형사 재판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헌법재판과 형사재판은 법적으로 별개의 절차지만 탄핵 심판에서 나온 증언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두 사령관은 사실상 '남의 재판'인 헌재에서 보수적으로 말을 아끼는 전략을 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일련의 행위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명령에 따른 임무 수행이었고, 병력 투입이 위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는 입장은 분명히 밝혔다. 이 전 사령관은 "검찰총장까지 하신 대통령님이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아마 전문가이신데 전 세계 전 국민에게 방송을 통해서 (선포한 계엄이) 위법, 위헌이라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여 전 사령관도 "국군 통수권자가 하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짧은 순간에 합법, 위법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군인들에게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내란죄는 범죄 의도를 넘어서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혐의가 인정되는 범죄로 국헌문란은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 질서와 정부 체제가 무너지는 상황을 말한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계엄군이 국회를 진입하는 등 일부 불법으로 여겨질 상황이 발생했지만 헌법 질서 등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은 전날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 군사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자신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로 준비한 입장문을 꺼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계엄에 대한 생각에 여러 차례 반대 직언을 드렸다"며 "저는 계엄을 모의하거나 준비할 그 어떤 이유와 동기도 없고 계엄 후 다음 일이 무엇인지 계획 자체를 알지 못해 기대되는 이익도 없다"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은 무릎까지 꿇고 윤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계엄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