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욱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부장(사법연수원 34기·부장검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15조원.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단 하루 만에 오가는 돈이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1500만명에 이른다. 평범한 직장인이 수백·수천만원을 가상자산에 투자해 수십억원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가상자산 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관련 범죄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스캠(scam) 코인 사기나 이른바 작전에 당해 결혼·노후 자금까지 잃는 이들이 많다. 2018년∼2022년 5년간 국내 가상자산 사기 피해금액은 5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검찰은 임시로 운영되던 국내 첫 가상자산 범죄 전담 조직,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을 지난달 25일 합동수사부(합수부)로 승격하고 정식 부서로 출범시켰다. 검사와 금융기관 파견직원 등 총 30명 규모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지 약 1년 7개월 만이다.

합수부장을 맡고 있는 박건욱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4기)는 향후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수사를 펼칠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 그는 "조직 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면서 수사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력이 고정적으로 소속될 수 있게 됐다"며 "이에 따라 범죄 정보의 체계적 관리와 중장기적 심층 수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소속감이 생긴 것도 큰 변화다. 가상자산 범죄는 국내외 금융·환전·송금·세무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원(FSS)·금융정보분석원(FIU)·국세청·관세청·한국거래소(KRX)·예금보험공사 등 각 기관의 전문 인력이 파견돼 수사에 투입된다. 단합이 잘 되면 수사 성과가 더 커질 수 있는 구조다.

박 부장검사는 "임시 조직 형태로는 단합력이 지속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식 부서가 되면서 합수부와 유관기관의 협력 체계가 강화됐다"며 "범죄에 대한 대응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상자산 범죄는 미국·영국 등 주요국 수사당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라며 "이제는 국제 공조 채널을 갖출 기반이 마련됐으니 국제 수배나 범죄수익 환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박건욱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부장(사법연수원 34기·부장검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합수부는 갈수록 진화하는 가상자산 범죄에 적극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시세조종 처벌이 강화되자 간접적으로 시세조종 효과를 낼 수 있는 범죄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박 부장검사의 설명이다.

박 부장검사는 "해외 거래소에서 먼저 가격을 움직인 뒤 국내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 조작이나 거래소의 이상 거래 감시기준을 사전에 파악하고 자동 매매 프로그램을 이용해 감시를 교묘하게 회피하면서 코인 시세를 조종하는 방법도 등장하는 등 수법이 한층 정교해졌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검사는 가상자산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꼽았다. 그는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이 코인이 왜 오르고 내리는지, 누가 사고파는지, 내부자가 어떤 정보를 쥐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며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만큼 개인 투자자는 늘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시장에도 공시 제도를 도입하고 발행 주체가 허위 정보나 불성실 공시를 할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어야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 공시 제도를 통해 불공정거래행위가 일어날 환경 자체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부장검사는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범죄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단기간에 큰 수익을 실현할 수 있음을 내세우거나 비현실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경우, 연예인·인플루언서를 내세워 과장된 홍보만 하는 코인이라면 먼저 의심해야 한다"며 "코인 발행자들의 인적 사항이 공개돼 있지 않고 검색되지 않는 외국인 이름인 경우도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생활 20년 중 절반을 반부패수사부(특별수사부)에서 근무한 박 부장검사는 2023년 금융·교육 전담 수사부인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 2022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범죄수익환수과장 등을 거친 베테랑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가상자산 범죄를 철저히 수사하고 엄단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을 비롯한 참석자들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별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 출범식에서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수홍 남부지검 금조1부장, 추창현 형사6부장, 대검찰청 이응철 대변인, 구승모 반부패부장, 심우정 검찰총장, 남부지검 신응석 검사장, 이희동 1차장검사, 박건욱 가상자산범죄 합수부장, 안창주 금융증권범죄 합수부장.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