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몸싸움을 하던 상대가 의식을 잃고 사망했더라도 그 사망을 예견할 가능성이 없었다면 폭행치사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다만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폭행치사죄의 사망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에 관한 법리 오해 잘못이 없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기 때문에 무죄로 판단한 1심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했다.

폭행치사죄란 폭행죄를 범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결과적 가중범이다. 결과적 가중범은 고의에 의한 기본 범죄로 인해 예견하지 못했던 중한 결과가 발생한 때 형을 가중시키는 것을 뜻한다. 폭행치사죄가 인정되려면 폭행 행위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폭행으로 인해 상대방이 숨질 수 있다는 예견이 가능해야 한다.

A씨는 2023년 7월22일 화물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피해자 B씨와 끼어들기 관련해 시비가 붙어 갓길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A씨는 B씨를 화단에 넘어뜨려 몸에 올라타 왼손으로 B씨의 가슴을 누르기도 했다. 싸움이 끝나고 도로로 걸어나오던 B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로 이송됐고 결국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B씨에 대한 국과수 부검 과정에서 고도의 심장 동맥경화증이 발견됐고 국과수는 "심장질병이 있는 경우 심리사회적 요인이 급성사망을 촉진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1심은 국과수 감정 결과 등을 고려해 A씨가 B씨의 사망을 예견하기 어려웠다고 판단,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B씨와 처음 만난 사이로 B씨에게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며 "A씨의 폭행이 경미하다고 할 순 없지만 국과수 감정 등에 비춰볼 때 사망을 초래할 정도로 중대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심은 역시 유사한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 B씨를 몸으로 누른 행위는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는 아니어도 폭행 직후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면 폭행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도 "다만 (그 정도의 몸싸움으로)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건 통상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결과로 판단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