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회생기업들의 출자전환 주식에 등록면허세(이하 등록세)를 과세하지 않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지만 법 개정 이전의 과세분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이전까지는 지방세법에선 과세한 반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에선 비과세해 혼란이 컸고 많은 회생기업이 등록세 폭탄을 맞았다. 법조계에선 회생기업이 시기에 따라 등록세 과세 여부가 정해진 불공정을 해소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31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2부(부장판사 윤종구·김우수·최수환)는 지난 19일 스포츠용품 제조업체 A사가 "등록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뒤집고 등록세 약 7000만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A사는 2018년 회생절차에 돌입, 2019년 채무 일부는 현금 변제했다. 나머지 채무 48억여원은 출자전환했고 이를 통해 발행한 신주는 모두 소각했다. 이후 서울회생법원은 신주발행에 관한 등기를 직권으로 등기소에 촉탁해 2019년 4월 자본증가에 따른 등기를 마쳤고 같은해 9월 회생절차가 종료됐다.

강남구청은 등기를 마친 지 4년 뒤인 2023년 4월 출자전환해 자본금 증가 48억여원의 등기를 과세 대상으로 판단, 등록세 5810만원과 지방교육세 1162만원을 부과했다. A사는 이 같은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회생기업 세금폭탄…지방세법 개정 9년 만에 새로운 국면
A사 사례와 같은 이른바 '회생기업 세금폭탄' 논란은 2015년 지방세법 개정에서 시작됐다. 당초 지방세법은 법원으로부터 회생인가를 받은 기업의 등록세를 비과세하도록 규정했지만 이 때 법인의 출자전환에 따른 등기 등은 비과세에서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2005년 제정 당시부터 촉탁등기의 등록세를 비과세로 규정한 채무자회생법과 충돌이 발생했다.

두 법이 충돌하는 사이 지방자치단체들은 2021년부터 지방세법을 근거로 회생기업에 뒤늦게 등록세를 무더기로 과세했다. 2023년 전국 회생기업들에 부과된 등록세 과세규모가 1000억원을 훌쩍 넘을 정도였다. 회생기업 입장에선 등기 당시 등록세와 관련한 어떤 고지도 받지 못하다 수년이 흘러 지자체로부터 예상치 못한 세금에 지연이자까지 납부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됐다.

이에 법무부는 2023년 문제가 된 지방세법을 다시 개정해 출자전환 등에 따른 등기 관련 등록세는 전면 비과세하도록 했다. 개정안 시행 당시 회생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회생계획을 수행 중인 경우에도 비과세가 소급 적용되도록 했다. 하지만 2019년 이미 회생절차가 끝난 A사는 소급 적용을 받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2015~2023년 회생절차를 끝낸 기업만 등록세를 납부해야 하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실질과세원칙 꺼내든 2심…대법 판단 받을 수 있을까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1심은 두 법이 충돌하더라도 지방세법(등록세 과세)보다 채무자회생법(등록세 비과세)을 우선할 수 없다며 과세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지방세특례제한법은 △지방세법 △지방세기본법 △지방세징수법 △조세특례제한법 및 조약에 따르지 않고는 지방세법에서 정한 일반과세에 대한 지방세 특례를 정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며 "채무자회생법 조항이 지방세인 등록세의 면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은 출자전환을 했더라도 A사에 실질적인 재산권 변동이 없었다면 과세가 부당하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실질과세 원칙에 위반되는 과세라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출자전환으로 발행된 신주가 모두 무상 소각됨에 따라 회생채권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만족을 얻지 못했다"며 "단지 형식상으로만 출자전환의 외관을 취하였을 뿐 '채무의 면제'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동안 과세당국은 등록세는 등기 자체를 과세물건으로 하는 조세이기 때문에 출자전환된 주식 전부가 소각됐더라도 과세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법원도 일관되게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2023년 지방세법 개정 이전까지 세금폭탄을 맞고, 소급적용도 받지 못한 회생기업들이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사한 분쟁에서 이번 판결이 중요한 판례로 인용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대법원이 실질과세원칙과는 다른 법리로 이번 사건을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