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정부가 인공지능 3대 강국(AI G3) 도약을 국가 비전으로 천명하고 AI 중심 국정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가 주도 초거대 AI 모델 개발, 반도체 및 클라우드 인프라 확충, AI 전문인재 양성 등 기술 중심의 투자와 정책이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 강화, 민간 전문가 중심의 정책 설계, 관련 예산의 집중적 배분 등 전례 없이 강한 추진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다만 AI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법 제도 및 데이터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인공지능 경쟁력은 양질의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해서 AI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터 혁신 전략이 글로벌 AI 경쟁력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인 이유다.

데이터 혁신 전략은 단순히 데이터의 양을 넘어서 접근성, 활용 가능성, 법적 확실성까지를 포괄해야 한다. 아무리 고도화된 기술을 갖췄다 해도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하고 가공하며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면 실질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한국의 현재 여건은 분명한 제약을 안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가 발표한 '전 세계 AI 서비스 사용량 톱 50'에 한국의 자체 모델 기반 서비스는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서비스가 활발히 출시되려면, 기술력뿐만 아니라 데이터 활용 생태계의 경직성과 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경직된 해석과 복잡한 행정 절차는 민간의 AI 개발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민간이 다년간 축적해 온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려 할 때 그 법적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사 데이터를 활용한 AI 개발에 소극적인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민간이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 활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현재 구조는 산업적 발전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나아가 해외 기업들이 유연한 데이터 활용 체계를 바탕으로 빠르게 모델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해도 글로벌 AI 경쟁력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AI 생태계에 있어서 데이터는 단순한 부수적 자원이 아니다. AI 기술을 실현하는 밑바탕이며 모델의 정확도·공정성·안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AI G3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 전략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기술과 국민의 권익 보호 사이에서 현실적 균형점을 찾고 기업이 법적 위험 없이 책임 있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가명 정보 활용 확대 방안이나 AI 학습용 데이터 활용 법적 근거 확충 등 기업과 기관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함께 갖도록 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타이밍도 매우 중요하다. 기존 법 제도의 대변화가 당장 어렵다면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2년이든 3년이든 일몰제 형태의 한시적인 과감한 개인정보나 저작권에 대한 특례제도의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소버린 AI(Sovereign AI)' 전략 측면에서도 데이터의 책임 있는 활용이 보장돼야 진정한 자립형 AI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 G3 달성은 하드웨어 확보나 기술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AI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혁신과 함께 법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AI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있고 그 전장의 중심에는 '데이터'가 있다. 한국이 진정한 AI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국가 차원의 데이터 혁신 전략을 재설계할 때다.

가천대 법학과 최경진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미국 듀크대학교 법학 석사 출신인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가천대 인공지능·빅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인공지능 및 개인정보 분야 전문가다. 최 교수는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통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정부대표 등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