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공사에 특정 업체가 낙찰되도록 이른바 '들러리 입찰'을 한 업체는 지급받은 설계보상비 전액에 해당하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설계보상비란 입찰에서 탈락한 회사가 입찰 참여시 지출한 설계비 일부를 발주자가 보상해주는 것을 뜻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앞서 지급한 설계보상비 3억2000여만원을 돌려달라"며 건설사 A사와 B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11년 5월 광주·전남 혁신도시 수질복원센터 공사에 대한 입찰공고를 했다. C사는 입찰에 참여했지만 다른 참가자가 없어 낙찰받지 못했다. 이에 C사는 A사에 해당 입찰에 '들러리'로 참여해줄 것을 부탁했다. A사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B사와 공동수급체를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다.

그 결과 C사는 낙찰자로 결정돼 한국토지주택공사와 430억 상당의 공사도급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이후 A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설계보상비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해당 입찰공고에는 낙찰자로 결정되지 않은 탈락자에게 설계비의 일부를 보상한다고 돼 있었다. 이에 A사는 들러리로 입찰한 사실을 숨긴 채 한국토지주택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13년 10월 승소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고 A사는 실제로 설계보상비와 지연손해금 등 총 3억2000여만원을 지급받게 됐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14년 3월 A사와 C사의 들러리 입찰 합의사실을 밝혀내면서 불거졌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A사와 C사에 각각 19억5000여만원과 14억1000여만원의 과징금 납부명령을 내렸다. A사는 이같은 공정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가 확정됐다.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는 A사와 B사를 상대로 이미 지급한 설계보상비 3억2000여만원에 해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담합에 따라 들러리로 입찰에 참여한 A사와 B사가 공동으로 3억2000여만원의 설계보상비를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사가 C사와 낙찰자, 낙찰가격 등을 결정해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했고 그 고의도 인정된다"며 "이는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 A사 등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수급체의 구성원으로 입찰에 참여한 B사에 대해서도 "B사는 25%의 지분으로 A사의 입찰에 참여했고 들러리 입찰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입찰에 참여하도록 방조한 것이 인정된다"며 A사와 공동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사 등은 법원에서 받은 확정 판결에 따라 설계보상비를 지급받은 것이기 때문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제기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해당 확정 판결과 모순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들러리 입찰 사실을 숨긴 채 제기한 소송의 확정 판결과 이번 사건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A사 등의 들러리 입찰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설계보상비를 지급하게 되는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라며 "A사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이전 확정판결의 효력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들러리 입찰에 참여하고도 설계보상비를 지급받은 건설회사에 설계보상비 전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명령한 최초의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건설회사가 입찰담합을 통해 들러리 입찰에 참여하고 그 사실을 숨긴 채 발주처에 설계보상비를 청구해 지급받는 사례가 상당수 밝혀지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이같은 설계보상비 반환 청구소송 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