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가명)이는 친구 경수(가명)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 6명이 고시텔의 공동 취사장에 있다고 했다. 밥이나 먹을까하는 생각에 친구들이 있는 고시텔로 간 민철이. 친구들은 만취상태인 민지(가명)를 성폭행 중이었다. 한 명이 방 안에서 민지를 성폭행하는 동안 나머지 친구들은 공동 취사장에서 밥을 먹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밥을 먹으러 간 민철이는 정말 밥만 먹었다. 옆 방에서 집단 강간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경찰에 잡혔다. 민철이도 공범으로 잡혔다. 민철이는 그제서야 알았다. 이 일이 이렇게 심각한 범죄였다는 사실을.

"범죄 의식 자체가 낮아요. 어떤 행위를 했을 때 범죄인 건 알지만 심각성을 잘 모르는거죠. 민철이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범죄의 심각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거에요."

◇범죄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이게 심각한 범죄였나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인 김광민 변호사가 말하는 청소년과 성인 범죄 차이 중 하나다. 이유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어린 시절부터 폭력 등 각종 범죄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동기에는 집에서 가정폭력에 노출된다. 살기위해 집을 뛰쳐 나오고, 거리에서는 살기 위해 범죄를 배운다. 김 소장은 "길거리로 도망쳐나온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며 "이들에게 절도는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청소년 범죄를 성인범죄와 동일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되는 이유다.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는 이름 그대로 청소년을 위한 법률지원 활동을 한다. 지난 2014년10월 문을 열었다. 전국에서 유일한 청소년 대상 법률지원단체다. 가장 큰 장점은 법률구조와 사회복지를 함께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복지단체들이 '학대'를 당한 피해자 보호에 주목한다면,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을 바라본다. 청소년 범죄는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청소년의 특수함에 주목한다.

"경철(가명)이는 5살때 쯤 할머니가 집에서 데리고 나와서 고아원에 보냈어요. 아빠와 둘이 살았는데 그 집에 계속 살면 아이가 맞아서 죽을 것 같으니 할머니가 데리고 나온 거에요. 아빠는 경철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죠. 일년 후 할아버지가 다시 경철이를 데리고 나왔어요. 역시 그 집에 있다간 맞아 죽을 것 같아서. 그때 아빠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고, 경철이는 할아버지와 살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할아버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학대 피해자였던 아이가 자라 할아버지를 때리는 가해자가 됐다. 제3자들은 '어떻게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를 때릴 수 있느냐'며 분노하지만, 경철에게 가족의 경험은 자신을 때린 아빠부터 시작한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 익숙했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어렸을 때 약했기때문에 아빠에게 맞은거잖아요. 자신이 강해졌으니 폭력을 휘두르는거죠."

그에게 누군가를 때리고 위에 올라서는 것이 생존법이었던 셈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문제 해결? 집이 문제의 시작인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성인의 눈'으로 청소년 범죄를 바라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김 소장의 생각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법은 제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살기 위해 도망쳐나온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라'는 것일 수 있어요. 가정이 회복될 수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가정에서 탈출시켜주는 방법도 필요해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죠."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출신고가 돼 있는 아이를 경찰이나 쉼터가 발견하면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정석처럼 자리잡혀 있다. 청소년들이 정부가 마련해놓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거리를 떠도는 가장 큰 이유다.

"집을 나와 쉼터에 가면 인적조사를 해요. 만약 가출신고가 돼 있다면 집으로 돌려보내죠. 모든 정부 서비스의 전제사항은 '관리'에 있어요. 정부의 관리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러니 자기들끼리 모여 살 방법을 궁리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죠"

◇"문제 생기면 타올랐다 사라져…장기적 접근 필요"

각종 아동학대, 청소년 범죄가 발생하면 여론은 들끓는다. 하지만 끓어오른 만큼 쉽게 식어내린다. 김 변호사는 분노 표출에서 끝나는 논의를 경계했다. 흉악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성인들의 분노 폭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 각종 여론이 쏟아져 나오죠. 하지만 이는 분노 표출인 경우가 많아요. 청소년 입장에서는 논의가 이뤄지질 않아요. 이것이 건전한 논의인가는 의문이죠."

문제가 발생하면 각종 대책이 쏟아져나오다가 어느순간 사라져버리는 것도 문제다. '장기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말하는 해결책인듯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 아동학대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최근에 생긴 사건들이 아니에요. 지금 발견되는 이유는 지금 조사를 하기 때문이죠. 다들 제도가 부족하다고 탓하지만, 당장 제도가 바뀐게 있나요? 지금 있는 제도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다는거에요. 하지만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조사일 뿐이죠. 조사가 끝나면 인력을 다시 줄고, 관심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또 방치되고, 같은 문제가 발생하겠죠."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는 사단법인 '세상을 품은 아이들'을 수탁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법원과 연계해 5호 이상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위탁해 보호하고 있다. 김 소장은 이곳에서 환경에 따라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봤다.

"아이들은 바뀌어요. 하지만 공통점은 한 두 달안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과 혼자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반드시 누군가 옆에 있어야죠. 오랜 시간동안 옆에서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반드시 바뀝니다. 처벌이 다가 아니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