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 전국에 여성 변호사가 50명이 안된 걸로 기억해요. 사법고시 합격했을 때 판검사부터 변호사까지 여성 법률가들이 다 같이 모여 축하를 할 정도로 수가 적었죠. 지금은 3000명이 넘었으니 시대가 많이 바뀌었네요."

2016년 우주선이 화성까지 날아가는 시대지만 여전히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은 주목을 받는다.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또 한 명의 '최초의 여성'이 탄생했다.

지난 14일 치러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2대 회장 선거에서 법무법인 지향의 정연순 변호사(49·연수원 23기)가 당선됐다. 지난 1988년 민변이 출범한지 28년, 정 변호사가 민변 회원이 된지 22년만이다. 정 변호사는 민변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이기도 했고, 4번째 여성 회원이기도 하다. 정 변호사는 오는 5월28일 회장으로 취임해 2년 임기를 시작한다.

민변으로서도 처음으로 치러진 경선이다. 출범 이후 5대 회장까지는 추대 방식으로 선출됐다. 지난 2004년부터 경선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금까지 모두 단독 후보가 출마해 사실상 추대와 같았다. 이번 12대 회장 선거에는 정 변호사와 민변 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 두 명의 후보가 출마해 경쟁했다.

"작은 조직 안에 경쟁이라는 선거의 속성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어요. 상대 후보였던 이재화 변호사과 그런 점에서 의견이 맞았어요. 규정이나 규제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서로 선거의 모범을 보이자. 조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큰 잡음없이 경선을 치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정 변호사는 지난 1994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변호사로 개업, 민변 회원이 됐다. 민변 가입 후 여성위원회 위원장과 사무총장, 부회장 등을 거쳤다.

"기획하고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시민사회와 직접 소통할 것"

정 변호사가 준비하고 있는 첫 번째 과제는 '공익인권변론센터' 설립이다. 오는 4월 문을 열 예정이다.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은 주로 대형 로펌의 공익재단, 공익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률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변이 만드는 공익인권변론센터는 무엇이 다를까? 정 변호사는 '기획'을 말했다.

"민변이 말하는 공익센터는 '기획하고 배치하고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시민사회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제제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부분을 찾아서, 공익소송을 제기하면 좋은 사안들을 기획해, 전문성을 가진 회원들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는 연결자, 기획자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동안 민변이 공익변론을 안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이후 8년간 1100여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무료변론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기소된 시민 800여명, 인터넷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을 비판했다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이들 300여명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해에야 재판이 마무리됐다. 주로 인권 등 기본권 침해에 관한 사건들이다.

그동안 발생하는 사건들을 수습하는 차원의 활동이었다면, 앞으로는 센터를 통해 체계적으로 기획해 운영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시민들과의 소통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센터를 중심으로 시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조직의 개방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시민들과 많이 소통하고 공익변론 등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공익변론 이외에도 판결들을 쉽게 풀어서 왜 이런 판결이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인권, 기본권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작업도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활동을 많이 알리고,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통해 깊고 폭넓은 지지를 받겠다는 것이 목표에요."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