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초. 내무부 치안국은 각 지역 경찰서에 보도연맹원과 요시찰대상자들을 예비검속, 즉 '미리 잡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대구지역 각 경찰과 헌병들은 이같은 지시에 따라, 지역의 보도연맹원들과 요시찰대상자들을 연행해 경찰서 유치장, 대구형무소, 극장 등에 구금했다. 그리고 경산시 폐코발트광산 등에서 사살했다. 이와 유사한 희생사건이 그 무렵 경북 영덕, 울진, 경남 함양 등에서도 발생했다. 이를 '국민보도연맹사건'이라고 한다.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유족·상속인들은 "대한민국 소속 군인,경찰,치안대가 희생자들을 절차 없이 연행·구금하고 살해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으니, 유족과 상속인들에게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유족 본인의 위자료), 상속분(망인의 위자료)에 해당하는 금액, 또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 조사를 했다. 조사 끝에, 지난 2009년11월10일 고 김형규(가명)씨가 경남 함양 국민보도연맹사건에서 희생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형규씨는 1959년8월10일 국민보도연명사건으로 사망했다. 당시 유족으로는 부인인 신영(가명)씨와 아버지인 대명(가명)씨 어머니인 옥순(가명)씨가 있었다. 형규씨와 신영씨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신영씨는 국가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자신이 '단독'으로 상속했다고 주장하며, 망인인 형규씨의 위자료 8000만원과 본인 신영씨의 위자료 4000만원,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지급을 요구했다.

형규씨의 희생에 따른 위자료를 받을 자격은 누구에게 있을까. 형규씨의 처인 신영씨일까, 형규씨의 부모인 대명씨와 옥순씨일까. 아니면 이들 모두에게 상속권이 있어 나눠가져야 할까.

원심은 아버지 대명씨가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한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 결정을 뒤집었다. 처인 신영씨가 '단독상속인'이라고 판단했다. 두 법원은 왜 다른 판결을 내렸을까.

"국가에 따른 희생…망인과 유족에게 손해배상 해야"

먼저 대법원은 국가가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국군과 각 지역 경찰서 소속 경찰 등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지 국민보도연맹원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행한 후 희생자들을 살해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행위"라며 "공무원 등의 직무상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어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국가는) 제헌 헌법(1948.7.17. 제정돼 1960.6.15.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에 따라 소속 공무원 등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희생당한 망인들과 그 유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결정했다.

상속관계에 대해서는 처인 신영씨가 '단독상속인'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호주가 아닌 기혼 장남이 직계비속, 즉 자녀가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습이었다"고 말했다.

장남이었던 형규씨의 당시 유족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처인 신영씨가 있었고,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면 망인(형규)의 처인 신영씨가 단독으로 상속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법 시행 전 자녀 없이 사망…상속권은 '배우자'에게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조선인 사이 민사관계를 규제하기 위해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해 공포했다. 조선민사령 제1조는 "민사에 관한 사항은 본령 기타의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음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했다. '다음의 법률'로는 일본의 민법과 상법, 민사소송법 등 23종의 일본의 민사관계법을 열거했다. 이로써 일본의 민사법이 우리나라에 적용되게 됐다. 이를 의용민법이라 부른다.

그런데 '조선민사령'은 '친족과 상속분야'에 관해서는 일본민법을 적용하지 않고 '관습에 의한다'고 예외를 인정했다(11조). 가족법 분야에서 우리의 관습법을 법원(法源)으로 인정한 것은 재산법분야와 달리 가족법분야는 각기 고유한 전통과 습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본민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재산상속에 관한 관습법으로 정해진 것은, 조선시대 성문상속법제의 내용과 크게 달라진 남자중심, 특히 '장자' 중심의 조선 후기의 상속 관행이었다. 이때 일본상속법, 즉 '가독상속'의 법리가 침투돼 상속의 기본 원리가 바뀌었다. 가독상속은 호주의 사망 또는 다른 이유로 호주권이 없어졌을 때 호주를 상속받는 사람이 전 호주의 지위를 이어받는 것을 말한다.

일제에 의한 관습 재산상속법은 재산상속을 '호주상속과 연결짓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눠 이원적으로 규정했다.

"남성 '호주' 장자중심…호주 아니라면 나눠서"

피상속인, 즉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남성 호주'인 경우에는, 1차로 남자 자손만 가계를 승계할 자격이 있다고 보고 여자는 배제했다. 특히 호주를 함께 상속받는 장자를 우대했다. 호주 상속을 받는 장자가 일단 유산 전부를 물려받고, 다른 상속인이 분가할 때 재산을 나눠준다. 그런데 분가를 할 때는 호주의 동의가 필요했다. 사실상 장자단독상속인 셈이다.

반면 피상속인이 남자 호주가 아닌 가족일 경우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눠서 상속받는 것으로 봤다. 일본 민법상의 가독상속과 유산상속의 법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호주상속이 상속법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고, 재산상속은 그에 예속됐으며, 상속에서 남녀, 적서의 차별이 더 확대됐다.

피상속인이 호주가 아니면서 자녀가 없으면 배우자가 단독으로 상속권을 갖게 된다. 이번 사건은 호주가 아닌 형규씨가 사망한 이후 상속권이 누구에게 가느냐는 문제인데, 배우자인 신영씨가 단독상속인이 되는 것이 당시 관습법이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런 관습상속법은 단지 법제사적인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법률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1960년 제정 민법 부칙 제25조에 의하면 민법 시행일 전에 개시된 상속에 관해서는 민법 시행일 이후에도 구법의 규정을 적용하도록 돼있는데, 구법인 조선민사령에서 상속에 관해서는 관습에 의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도 망인이 1959년 사망해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상속이 개시됐다. 상속에 관한 구 관습을 확인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호주가 아닌 기혼의 장남이 직계비속, 즉 자녀가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습이었다. 이러한 관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사법협회 질의, 응답이 있다.

1960년 이후 사망했다면?…배우자·부모 공동상속

만약 이 사건에서 형규씨가 민법이 시행된 1960년1월1일 이후 사망했다면 제정민법에 따라 상속관계가 해결됐을 것이다. 제정 민법에 따르면, 동순위의 상속인이 여러명일 때는 그 상속분은 동일하게 나누지만, 재산상속인이 동시에 호주상속을 할 경우에는 상속분은 그 고유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여자의 상속분은 남자의 상속분의 2분의1로 한다(제1009조 제1항).

그리고 피상속인의 처의 상속분은 직계비속(자녀)과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남자의 상속분의 2분의 1로 하고, 직계존속(부모 등)과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남자의 상속분과 같게 한다(제1009조 제3항).

이 사건처럼 피상속인이 호주가 아니라서 호주상속이 일어나지 않고, 피상속인에게 직계비속이 없는 경우, 배우자는 직계존속과 동순위로 상속을 하게 된다. 결국 신영씨는 망인의 부모와 공동으로 위자료를 상속하게 된다. 그 비율은 신영씨와 형규씨의 아버지 대명씨가 각각 5분의2, 형규씨의 어머니 옥순씨가 5분의1이 될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상훈 변호사는 43회 사법시험(연수원 33기)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고려대에서 친족상속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상속법과 신탁법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주로 가사·상속·신탁·가업승계 등을 전문분야로 가족간 가족기업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이슈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