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소유의 미술품을 빼돌린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 /사진=뉴스1

동양 그룹 사태가 발생한 뒤 고가의 그림을 빼돌려 매각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64·여)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63·여)가 항소심에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11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승련)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기일에서 이 전 부회장의 변호인은 "미술품을 반출해 창고에 보관한 행위는 위법하지 않다"며 "이 전 대표가 초범인 만큼 징역 2년의 실형은 너무 무겁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의 변호인도 "조세범을 처벌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정식 장부가 아닌 매입매출장에 따라 과세가 됐다"며 "근거 과세의 원칙에 반하는 과세이므로 조세포탈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래된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도와주기 위해 미술품 판매행위를 도운 것에 불과해 강제집행면탈죄의 고의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 검찰은 "홍 대표가 범행을 주도했다"며 "지나치게 가벼운 원심 판결을 취소하고 본인 행위에 해당하는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전 부회장에 대해서는 "단순 횡령이나 강제집행면탈이 아닌 부도액 3조원, 피해자 5만명, 피해금액 1조7000억에 이르는 동양그룹 사태로 빚어진 사건"이라며 "이 전 부회장이 홍 대표로부터 받은 미술품 판매대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 피해회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아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동양그룹 사태가 발생하자 미술품 등에 대한 압류조치를 피하기 위해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 자택과 사옥에서 보관하던 미술품, 고가구, 도자기, 장신구 400여점을 반출해 서미갤러리 창고 등에 숨기고 일부는 매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부회장은 반출한 미술품 중 13점을 국내외에서 총 47억9000만원에 판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이 전 부회장에게 징역 2년, 홍 대표에게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해 민사 소송과 행정 소송 등이 진행 중인 사정을 고려해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동양그룹 사태 피해자들이 발언 기회를 얻어 직접 피해자 진술을 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이 전 부회장 측이 95%까지 피해를 변제해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변제율이 34%밖에 안된다"며 "이번 사건을 보며 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엄정한 사법 정의와 피고인에 대한 법정 구속을 탄원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동양그룹 사태는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2014년 9월 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에 앞서 1조5000억원대 CP(기업어음)와 회사채 등 무담보 채권을 발행하면서 발생했다. 이후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시멘트 등이 잇따라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원금 보장이 불투명해졌고, 많은 이들이 손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