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프로보노. 라틴어로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 라는 뜻이다. 법조계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료변론이나 자문을 해주는 활동 등 사회공익활동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지난 19일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 산하 프로보노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서울변회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와 공익실현을 위해 프로보노 활동을 하는 변호사와 공익인권단체를 지원하고 공익변호사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 바른, 세종, 율촌, 화우, 태평양 등도 후원을 약속했다.

서울변회가 야심차게 설립한 프로보노지원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맡은 염형국 변호사를 지난 21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울변회 프로보노지원센터…'변호사-인권단체' 연결

염 변호사는 변호사와 공익단체를 연결해주는 것을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았다. 연간 50여명의 변호사를 공익활동이 필요한 이들과 이어줄 계획이다. 공익전담 변호사 양성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공익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던 변호사들과 법률 지원이 필요한 인권단체를 연결해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에요."

현재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은 대형 로펌이 만든 공익재단이나 공익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재단,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소형 로펌이나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들은 관련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지 않으면, 마음은 있어도 막상 활동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형 로펌은 인적, 물적 자원이 충분해 자체적으로 공익활동이 가능하지만, 소형 로펌이나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들은 공익활동을 하기 어려웠어요. 이들을 위한 중간다리 역할을 하려고 해요."

센터의 첫번째 프로젝트는 공익활동에 대한 변호사들의 수요 조사다. 변호사들이 원하는 활동과 분야에 대한 조사를 통해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찾으려 한다.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려고 해요. 변호사들이 어떤 공익활동을 원하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적합한 지원이 가능할 테니까요."

"공익법무법인 제도화 위해 변호사법 개정 필요"

염 변호사는 지난 2004년 한국 최초의 공익전담 법률사무소인 '공감'의 창립멤버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공익변호사의 길을 택해, 올해로 벌써 13년째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임료를 받고 사건을 맡아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죠.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을 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는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늘리기 위해 변호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변호사법에는 비영리 법률사무소에 대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법 개정을 통해 공익법무법인을 제도화 할 필요가 있어요. 비영리 법률사무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지금은 없는 상태에요. 지금 변호사법으로는 비영리법인도 법 위반 위험이 있어요. 또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도 필요하죠. 비영리 법률사무소에 세제혜택을 주는 것 같은 국가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변호사법 제34조는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도록 한다. 법조 브로커가 변호사를 고용해 영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이지만, 비영리법인이라도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지금 법률사무소는 영리와 비영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그 중간 영역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해요. 비영리 사회적 기업이면서 영리의 성격을 띄는 중간지대가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들어 비영리 활동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비용은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공익활동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겠죠."

"사회적 약자 희생양 삼는 사회…법조인 인권감수성 키워야"

그는 공익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점으로 '사회적 인식'을 말했다.

"공익사건의 주 의뢰인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에요.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사회가 어려운 것은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하는 잘못된 사회구조인데, 비난의 화살이 상대적으로 공격하기 쉬운 약자들에게 가는 거죠.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지난 13년간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회적 인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금은 나아지고 있을까. 그는 오히려 퇴보한 면도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는 많이 개선이 됐지만 인식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 분야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고요. 사회가 힘들어지면서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는 "인권에 대한 법조인들의 인식은 오히려 뒤쳐져있는 것 같다"고 봤다.

"가장 더디게 바뀌는 것이 법조인들인 것 같아요. 법이라는 것 자체가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봐요. 법조인들의 인식이 변하면 사회는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법조인들의 인권 의식,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법조인 양성 과정에서 공익 인권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주에서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기 전 50시간의 공익활동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요. 그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공익활동을 해본 사람과, 시험만 보고 바로 판검사, 변호사가 된 이들의 공익감수성에 대한 인식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죠. 공익교육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