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가목적 달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반대급부 없이 국민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걷는다. 복지국가 달성을 위한 재원 마련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세금을 걷어야 하는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금을 걷는 국가와 세금을 내는 국민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가가 세무조사를 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 국민들로부터 강제수단을 동원해 세금을 받아내는 과정에서는 국가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세금의 공공성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어느 기한까지 어떤 내용의 세금 납부 의무를 지는 것인가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와 국민 사이에 대등한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와 국민의 대등한 지위가 인정돼야 하는 문제에는 △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과 국민이 국가에게 잘못 납부한 세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의 문제' △ 국민이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고 납부하지 않았을 때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하는 '가산세'와 국가가 잘못 부과해서 받은 세금을 다시 돌려줄 때 가산해서 지급하는 '환급가산금'의 문제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과연 위 문제에 대해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 국가와 국민의 대등한 지위가 인정되고 있는가?

국가는 10년·국민은 최대 5년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과 국민이 국가에게 잘못 납부한 세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기간부터 살펴보자.

국가는 납세의무가 성립한 때부터 최대 10년(상속세와 증여세는 최대 15년)까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법에 위반되는 세금을 부과받았는데도 성실하게 국가에 세금을 납부한 국민이, 잘못 납부한 세금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는 세금을 부과받은 날부터 90일 안에 이의신청이나 조세심판청구 등의 불복절차를 취해야 한다.

국가가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한 경우처럼 세금 부과가 아예 무효인 경우라도 국민이 잘못 납부한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기간은 5년에 불과하다. 국가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에 비해 매우 짧다.

정부는 무려 40%·국민은 고작 1.8%

국민이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고 납부하지 않았을 때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하는 '가산세'와 국가가 잘못해 납부받은 세금을 국민에게 돌려줄 때 가산해서 지급하는 '환급가산금'도 불균형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이 허위 장부를 작성하는 등 부정행위를 하면서 법정신고기한까지 과세표준 신고를 하지 않은 부정부신고가산세는 무려 세액의 40%다. 납부불성실가산세는 납부하지 않은 세액에 미납일수와 10000분의 3을 곱한 금액으로 연 10.95%에 이른다.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원래 세금보다 더 큰 금액의 가산세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가가 잘못 부과해 더 받은 세금을 국민에게 돌려줄 때 가산해서 지급하는 환급가산금의 이율은 은행 예금이자율이 고려된 연 1.8%에 불과하다. 가산세율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조세관계에서 '국가·국민' 대등해져야

미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과 국민이 국가에 잘못 납부한 세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을 동일하게 정하고 있다.

또 일부 선진국들은 가산세를 본세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거나, 환급가산금 이율을 은행 예금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세금관계에서 국가와 국민의 대등한 지위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국민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법으로 허용된 각종 조세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 이른바 절세에 그치지 않고, 법에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세금을 내지 않는 탈세에 이르는 경우, 국가는 그러한 국민에게 정당한 세금을 걷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가 세금을 잘못 걷었다면, 응당 국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때와 같거나 비슷한 수준의 기준을 적용해, 잘못 걷은 세금을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조세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는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31기로 수료한 후 화우에 입사했다. 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 분야다. 그 동안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관세 등 전 세목에 걸쳐 다수의 조세쟁송과 자문사건을 수행했다. 강남세무서, 서대문세무서 등에서 외부위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