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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가명)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정승인 신고를 하고 재산을 물려 받았다.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보다 빚이 더 많더라도 물려받은 재산만큼만 빚을 갚도록 하는 제도다.
아버지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농협)에 빚이 있었다. 농협은 상구씨에게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상구씨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 중에서 '농협에게 8114만원과 이자를 갚으라'는 화해권고결정을 받았다.
농협은 상구씨가 아버지에게 받은 부동산을 강제경매 신청을 했다. 그런데 상구씨에게는 밀린 세금이 있었다. 정부는 체납된 세금을 받기 위해 교부 청구를 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땅을 팔아 생긴 돈으로 세금을 내라는 것.
경매법원은 배당 금액 8859만원 중 3000만원은 1순위인 다른 근저당권자에게, 5859만원은 정부에게 배당을 해 줬다. 2순위였지만, 정부에게 순위가 밀린 농협은 "세금보다 빚을 먼저 갚아야 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상속받은 재산으로 물려받은 빚 먼저 갚아라"
대법원은 농협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보다 농협이 먼저 돈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상속받은 재산은 상속받은 빚을 갚는 데 먼저 쓰여야 한다는 뜻이다.
민법 제1028조는 "상속인은 상속으로 취득한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할 수 있다"고 정해놨다. 이를 한정승인이라고 하는데 한정승인 신고를 하면 물려받은 물려받은 재산만큼만 빚을 갚으면 된다. 빚이 재산보다 더 많아도 더 갚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한정승인 신고를 한 사람, 즉 상구씨에게 받을 빚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상속채권자가 아닌 한정승인자의 고유채권자가 상속재산에 관해 저당권 등 담보권을 취득한 경우, 상속채권자가 우선적 지위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왔다(대법원 2010. 3. 18. 선고 2007다7778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상속재산에 관해 담보권을 취득했다는 등 사정이 없는 이상, 한정승인자(상구)의 고유채권자(정부)는 상속채권자(농협)가 상속재산(부동산)으로부터 채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형평의 원칙이나 한정승인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며 "조세채무인 경우에도 그것이 상속재산 자체에 부과된 조세나 가산금, 즉 당해세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한정승인…물려받은 재산으로만 빚 갚는다
피상속인의 채권자(상속채권자, 이 사건에서 농협)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사건에서 상구씨)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물려받기 때문이다(민법 제1005조).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한정승인자, 이 사건에서 상구씨)도 피상속인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받았기 때문에 피상속인의 채무는 곧 한정승인자의 채무가 된다.
다만 한정승인자는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책임을 진다(민법 제1028조). 따라서 한정승인자는 자신의 재산으로 상속채무를 갚을 책임은 없다. 상속채무는 전부 부담하지만 책임(강제집행의 문제)은 상속재산으로만 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속채권자가 한정승인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 승소를 하면 "피고(한정승인자)는 망인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 원고(상속채권자)에게 얼마(채무 전액)를 지급한다"는 식으로 판결이 나오게 된다.
'담보권'있다면?…'담보권' 가진 자가 '우선' 순위
그런데 상속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상속채권자'와 '한정승인자의 고유채권자' 중에 누가 우선배당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지 문제가 된다. 특히 이 사건은 상속채권자와 고유채권자 모두 담보물권을 가지지 못한 일반채권자인 경우이다.
대법원은 한정승인자에게 받을 돈이 있더라도, 상속채권자가 상속재산으로 빚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상속재산을 강제로 가져갈 수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 판결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정승인자의 고유채권자가 상속재산에 관해 저당권 등의 담보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담보권을 가지고 있는 고유채권자와 상속채권자 사이의 우열관계는 민법상 일반원칙에 따라 '담보권을 가진 고유채권자가 상속채권자보다 우선적 지위'를 가진다(대법원2010.3.18.선고2007다77781 전원합의체 판결).
'담보권'보다 '당해세'가 '우선'
한편 이 사건에서 피고는 조세채권자로서 국세의 우선권을 주장했고, 원심에서는 받아들여졌다. 만약 이 사건에서 피고가 가진 조세채권이 '당해세'에 관한 것이었다면 '당해세 우선의 원칙'에 따라 피고에게 우선 배당해주는 것이 옳다.
당해세는 매각부동산에 부과된 조세와 가산금으로 저당권 등으로 담보된 채권보다도 우선한다. 이를 '당해세 우선의 원칙'이라고 한다. 당해세는 담보물권을 취득하는 사람이 '앞으로 부과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서 오로지 당해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에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담세력)을 인정해 부과되는 국세(또는 지방세)만을 의미한다(대법원2007.2.22. 선고 2005다10845 판결).
당해세에 해당되는 국세로는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가 있고, 지방세로는 재산세와 자동차세가 대표적이다. 어떤 조세가 당해세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구체적, 세부적 판단 문제는 개별법령의 해석, 적용의 권한을 가진 법원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헌재 2001.2.22.선고 99헌바44 결정).
그런데 피고(정부)가 상구씨에 대해 가진 조세채권은 부가가치세에 관한 것으로서 이는 당해세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권을 부여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피고가 단순히 조세채권자라는 이유로 원고에 우선하여 피고에게 배당한 경매법원의 조치는 위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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