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피고가 2015년 10월 1일부터 2015년 11월 30일까지 한 세무조사에 기해 원고에게 부과한 세금을 모두 취소한다'고 소장 청구취지를 쓰면 안되고, 조세부과일자, 세목(조세종류), 세액(세금액수)을 특정해서 소장 청구취지를 제대로 적어서 다시 제출하세요."

"청구취지를 제대로 써서 내야 법원이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청구취지를 어떻게 써야 되는지 스스로 찾아보시던가 아니면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세요."

소송대리인의 도움 없이 직접 조세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법원은 소송당사자에게 '있었던 사실만 말하고 입증하라. 그러면 법원이 법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고 멋지게 얘기하지만 조세소송에서는 실상이 다른가 보다. 사실을 말하고 입증하기에 앞서 먼저 법원이 요구하는 형식에 맞게 소장 청구취지를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세부과처분이 무효임을 전제로 해 이미 납부한 세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은 민사상의 '부당이득반환청구'로 민사소송 절차에 따라야 한다. 행정법원이 아니라 민사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이 역시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잘못된 세금을 부과받고 가산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세금을 납부한 것도 억울한데, 엄격한 조세소송의 방식과 절차를 지키고 따라야만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변호사 도움 없는 조세소송. 솔직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10년 이상 소송을 해 온 노련한 변호사라 하더라도 경험이 없으면 조세소송은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인이 직접 법원에서 조세소송을 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면 현 제도에서 일반인이 변호사의 도움 없이 마음 편하게 직접 조세소송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법원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위법한 조세부과처분을 받은 것이 아닌지를 따져 주고, 그 결과 위법한 조세부과처분이라고 판단되면 그 절차가 민사소송인지 행정소송인지 가리지 말고, 그리고 소장 형식이나 내용이 다소 허술하더라도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있으면 조세부과처분의 효력을 부인해 국민의 권리를 구제하고자 하는 '사법적극주의'로의 입장 변화만 있으면 된다.

행정소송법 제26조는 '직권심리'라는 제목으로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도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위 조항에 따라, 일반인 소송당사자가 '세무서가 2015년 10월 1일부터 2015년 11월 30일까지 한 세무조사에 기해 자신에게 부과한 조세를 취소한다'는 취지로만 청구취지를 기재한 경우에도 세무조사결과서, 납부고지서를 통해 세목과 세액을 특정한 다음 불복의 범위에 대한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직권으로 청구취지를 정리해 소송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또 법원은 소송당사자의 주장을 심리한 결과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국민이 어떤 방법으로 법원에 권리구제를 요청했던지, 민사소송절차나 행정소송절차를 따질 것 없이, 적극적으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의 회복을 명하는 판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법원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법원의 업무부담이 가중되고, 사후적인 권리구제 기관이라는 법원 고유의 기능을 넘어서는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과 세원발굴 정책으로 국민들의 세금 부담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가 세금을 잘못 걷은 것이 확인되는 경우 법원은 소송의 방법과 형식을 고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국민에게 세금이 반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조세 선진국으로 가는 또 하나의 지름길이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는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31기로 수료한 후 화우에 입사했다. 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 분야다. 그 동안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관세 등 전 세목에 걸쳐 다수의 조세쟁송과 자문사건을 수행했다. 강남세무서, 서대문세무서 등에서 외부위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