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여행객들이 몰리는 성수기가 되면 숙박, 항공료가 비수기에 비해 2배, 많게는 3배까지 치솟기도 한다. 여름철은 주로 무더위가 한창인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를 '성수기'로 본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처럼 성수기, 그 중에서도 극성수기에 피서에 나선 여행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값을 치르고 숙박과 교통편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온라인 소셜커머스나 오픈마켓 등을 통해 숙박권과 항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숙박과 항공 요금을 해결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바람과 경쟁적으로 ‘싼 가격’을 내세우는 온라인 서비스 시장의 성장이 빚어낸 새로운 광경이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숙박권이나 항공권을 구입할 때는 취소 수수료에 관한 규정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서는 취소가 아예 불가능하거나, 주문 즉시 취소하더라도 높은 수수료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특가 호텔, 싸니까 취소 안 돼?

대학원생 A씨는 지난 7월 말 결혼한 언니와 6살 조카를 데리고 3박 4일 홍콩을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A씨는 한 소셜커머스를 통해 여행 세 달 전 호텔과 항공편을 예매했다. 예매 당시 A씨는 취소에 관한 규정이 팝업창으로 뜨는 것을 봤지만 성수기 여행이지만 비수기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가격으로 여행경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출발 3일 전 A씨의 조카가 홍역에 걸렸고, 이들 가족의 여행은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A씨는 황급히 소셜커머스 업체에 전화를 했지만, "해당 여행 상품들은 특가 할인을 한 대신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공지했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숙박료와 항공료를 모두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A씨는 예약한 호텔에 직접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홍역은 일종의 전염병으로, 불가피한 상황이므로 금액의 일부라도 환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호텔 측은 거절했다. 성수기 특가 상품은 취소에 대한 위험 부담을 고객이 하도록 미리 공지가 돼 있던 부분이므로, 고객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가 아닌 이상 환불은 어렵다는 것이다. 항공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A씨 가족은 아픈 조카를 부모님에게 맡기고 여행길에 올랐고, "조카 걱정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최악의 여행을 보내다 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직장인 B씨는 8월 5일부터 2박 3일 간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해 7월 말 소셜커머스에서 판매하는 호텔 이틀 연박 숙박권을 구입했다. 하지만 회사에 급한 회의가 잡히며 휴가 일정이 미뤄진 B씨는 숙박권을 구입 바로 다음날 오전 판매처인 소셜커머스 측에 취소 및 환불을 요청했다.

B씨는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하는 취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소셜커머스 측은 "수수료 15%를 떼고 환불해주겠다"고 답변했다.

B씨가 숙박권을 구입할 당시 "본 상품은 특별 할인 상품으로 숙박권 이용일 전 일주일 이내에 취소하면 15%의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공지가 있었지만, B씨는 이 부분을 간과했던 것이다.

비록 상품 구입 직후 취소를 하긴 했지만, 숙박권 이용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의 시점에서의 취소였기 때문에 B씨의 경우는 수수료가 발생하는 기간에 해당됐다.

결국 B씨는 수수료 10%를 뺀 나머지 금액만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 공정위 '소비자분쟁해결기준'도 강제성 없어…환불 어려워도 소비자 구제 어려워

소셜커머스나 오픈마켓 등 온라인 업체들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은 종전보다 더 합리적인 가격에 여행을 갈 수 있게 됐지만, 환불이 불가능하다거나 취소 시 고액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등의 위험도 함께 떠안게 됐다.

결국 특별 할인 가격 적용 상품에 대한 취소나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약 당시부터 고객에 알렸다면, 취소에 대한 위험부담은 소비자의 몫인 것일까?

상품을 구매할 경우의 취소에 관한 규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가격 그대로 상품을 구매할 때에만 해당된다. 위 규정에는 일반 가격보다 할인을 해 싸게 상품을 매매할 때에 대한 기준이 누락돼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까지 특별 할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숙박이나 항공권을 예매한 뒤 취소할 때에 관련해 발생하는 수수료 등을 규정한 약관은 각 업체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지인이 비슷한 사례로 고민을 해 대신 특가 항공권의 환불에 관한 약관을 살펴본 경험이 있다고 하는 한 변호사는 "소셜커머스 등에 싸게 나온 여행상품들의 약관을 살펴보면 정가에서 할인이 된 만큼 취소시 수수료 부담이 발생하게끔 돼 있었다"며 "특히 파격적인 가격으로 항공권을 내놓은 외국 항공사들의 경우는 아예 환불이 안 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요즘 휴가철에 정가로 여행상품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비자들이 미리 특가로 싸게 나온 여행상품을 구입해두는 경우가 많다"며 "상품 할인 경쟁을 하는 온라인 업체가 늘어나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 만큼 이런 상품들의 취소에 따른 수수료 발생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공정위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보면 성수기라도 이용 예정일로부터 열흘 전까지는 수수료 없이 전액을 환불해주도록 되어 있지만, 이는 강제조항이 아니다"며 "강제성이 있는 법률로서 수수료의 기준을 정하게끔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가로 상품을 구입한 경우에 대한 수수료 규정이 공정위가 만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규정은 돼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 법률과 같은 강제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 해외 여행상품 예약 대행 사이트들은 국내 기준 적용 안 돼, "특히 조심해야"

특가 여행상품의 증가로 변화된 여행 문화 중 또 하나 두드러진 점은 '해외 여행의 증가'다. 할인율이 큰 상품도 많다 보니 웬만한 국내 여행보다 해외로 나가는 것이 더 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에 본사를 둔 숙박 업체나 항공사 예약 대행 사이트들의 경우는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수수료에 대한 기준을 만든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각 업체가 만든 '그들의' 약관에 따라 환불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해외 여행상품 예약 대행 사이트들의 수수료 규정 약관에 대해 문제점을 살펴볼 방침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호영 변호사(법무법인 폴라리스)는 "우리 국제사법 제27조 제1항을 보면, 일정한 경우에는 약관규제법과 소비자보호법 등 우리 법이 강행규정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는 부분에 있어 소비자의 권리는 국외법을 적용해서도 박탈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면서 해외 업체를 상대로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보호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변호사는 "비슷한 사례로 최근 우리 국민들이 구글을 피고로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내역의 정보공개를 청구한 사건(2014가합38116)에서 승소한 바 있다"며 "법리적으로 해외 업체를 상대로 우리 국민이 '강행규정 위반'을 문제 삼아 소송을 한다면 충분히 승소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수료 액수가 소송을 제기할 만큼 크지는 않다 보니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변호사는 "결국 집단소송, 징발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비자들의 법적 구제가 지금보다는 용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