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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의 복잡한 계약관계로 인한 대금체불은 고질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다. 최초 발주자가 지급한 대금이 최초 수급인과 중간의 여러 단계의 하수급인을 거쳐 현장 근로자가 받는 노임이나 자재·장비업자가 받는 대금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복잡한 연결고리 중 한 군데서라도 탈이 날 경우 사후단계 수급인으로부터 현장 근로자로 이어지는 자금흐름이 경색되기 마련이다.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이 지난 8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건설업종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15년간 임금체불 신고 근로자 수는 연평균 5만8900여명에 달하고 체불액수도 1600억~2400억원에 달했다.
이 1600억~2400억원이라는 금액도 실제 체불금액에 비해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발생된 체불금액 중 자재·장비업자가 못 받은 체불금액이나 원수급업자가 1,2차 하수급인을 대신해 변제해준 금액 등이 누락된 수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건설사들이 하수급인을 대신해 그 이하단계 수급인 등에게 대신 지급해주는 금액만 해도 연간 1000억원이 넘어간다"며 "실제 건설현장 체불액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통계조차 없다"고 말했다.
◇공사대금 채권, 수급인·하수급인의 여타 채권에 우선순위 밀린 게 원인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이같은 대금체불의 이유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최근 열렸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문화회관에서 한국건설법학회 주최로 열린 정기 세미나에서는 대림산업 법무지원팀의 김순태 차장이 '체불해결을 위한 방안 제언 - 실무적용 방법'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 차장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의 체불은 주로 현장과 무관한 제3자가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에 대한 채권을 바탕으로 공사대금을 (가)압류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이하단계 수급인에게 제대로 노임·자재·장비대금이 전달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이 공사대금을 받고 이를 현장과 무관한 용도로 유용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의 자금사정이 불안정할 경우에 공사대금을 자사의 대출금 상환 등에 사용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이 회생·파산 등 절차를 밟게 될 때 △공동도급시 대표수급인이 공사원가를 선부담했으나 여타 수급인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대표수급인에게 지급하지 않는 등의 경우에도 대금체불이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1년 8월에는 국토해양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이 노무비에 한정해 체불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노무비를 현장과 무관한 용도로 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자재·장비업체 등 영세업체들의 체불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2014년 11월에는 상습체불업체 명단을 공표하거나 하도급 계약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 내용의 법령개정도 단행됐으나 수급인·하수급인에 대한 제3채권자의 공사대금 (가)압류나 수급인·하수급인의 회생·파산 등 이유로 발생한 대금체불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발주자가 수급인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수급인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토록 하는 '하도급 직불제'의 경우도 건설현장에 만연해 있던 체불을 해결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간 체불 등을 발생시키지 않았던 정상적인 수급인의 경우 하수급인이 부실공사나 태업 등을 발생시키더라도 이에 대응할 방법이 없는 데다 공기지연, 공사중단, 하자발생 등의 경우 수급인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전체 체불의 92.9%는 수급인이 아니라 '하수급인과 자재·장비업자 및 근로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애먼 수급인을 제한하는 제도라는 지적이다. 올 6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내놓은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67%가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나 시장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만든 제도"라고 응답했고 "제도가 공사대금 체불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이들은 15.9%에 불과했다.
더구나 하도급대금 직접지불제가 하수급인이나 자재·장비업자, 근로자를 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수급인이 하도급계약을 체결해 하수급인을 통해 공사를 진행할 때 발주자는 '하도급대금 직접지불제'에 근거해 수급인으로부터 '직불동의서'를 받는다. 발주자가 수급인을 거치지 않고 하수급인에게 직접 대금을 지불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다.
하지만 김 차장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하도급계약 체결과 동시에 직접지불 합의를 한 후 (수급인·하수급인에 대한) (가)압류가 있게 되면 (가)압류 채권자에 대항할 수 없다"며 "(가)압류에 해당하는 공사대금을 (이하단계 하수급인 등에게) 직접지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주자에서부터 수급인을 거쳐 1,2차 및 그 이하단계 수급인을 통해 현장 근로자에게까지 원활하게 자금이 흘러들어가야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여러 단계에서 자금흐름이 끊어진다"며 "하수급인이나 2,3차 하수급인이 공사대금을 수령할 권한이 그 앞단계 수급인이 지고 있던 기존 채무에 비해 후순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도급계약 체결시 단계별 현금흐름을 채권계약화시켜 보호해야"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에 대한 2,3차 하수급인 및 자재·장비업자, 근로자의 대금채권을 수급인·하수급인이 기존에 지고 있던 채무보다 우선하도록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는 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김 차장은 (하)도급계약 체결시 △향후 체불금이 발생할 경우 체불금에 상응하는 미지급 공사대금을 △근로자나 자재·장비업자에게 양도하도록 하는 '채권양도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방안이 자재·장비업자나 근로자를 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단순한 '동의서' 형태의 직불제가 아니라 엄연한 채권계약을 체결해야 하수급인이나 자재·장비업자, 근로자의 대금청구권을 보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공동도급계약을 맺을 경우 다수 수급인 사이에서의 원가부담구조도 채권계약 형태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공동수급체 구성원의 하도급대금과 공사원가 안분금 채권을 담보할 목적으로 체권양도 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권형태로 보호하지 않을 경우 주간사(대표수급인)의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하수급인 이하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채권양도계약의 의무화 등은 대림산업이 2014년부터 현장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김 차장은 "체불금액이 증가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개선방안을 연구해 현장에 적용한 결과 실무적으로 체불금액이 해소되는 효과를 얻었다"며 "위 방안은 수급인 입장에서 하수급인의 체불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됐으나 발주자 입장에서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이같은 채권양도계약을 제도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의 하도급계약 관련조항과 지방자치단체 조례의 '직불동의서' 관련조항 등의 개정과 △기획재정부 계약예규에 관련규정 신설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제를 규정하고 있는 건설산업기본법 등 법령개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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