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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세간에서는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이라는 용어가 불온한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과거 카카오 주식의 블록딜 과정에 관여한 복수의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안이 계기가 됐다.
올해 들어서는 블록딜과 연계한 공매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블록딜을 통해 주식을 매수하기로 한 당사자가 장중에 주식을 내다판 행위에 대해서도 불법성 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블록딜 거래에 대한 잇따른 사법당국의 행보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사실상 블록딜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며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규모로 주식을 보유한 이들이 주식을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으면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시장충격을 줄이면서 대규모 매매를 성립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블록딜이다.
블록딜은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의 협상을 통해 진행되는데 대개 그 사이에 브로커(중개업자)가 매매를 성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블록딜을 통한 매매가격은 직전종가를 기준으로 상하한가 범위에서 매매 당사자간 합의에 따르도록 돼 있으나 대개 종가 대비 일정부분 할인된 가격으로 정해진다.
보통 5% 안팎의 할인율이 적용되곤 하는데 매매대상 주식의 인기가 없을수록 할인율이 크게 적용된다. 반대로 매매대상 주식의 인기가 많으면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는 전체 매매금액의 일정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매도자는 정규시장에 물량을 풀었을 때에 비해 적은 손실로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다. 매수자는 간혹 블록딜로 사들인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다음날 개장직후 바로 매도하곤 한다.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이고 최대한 빨리 마진을 확정짓기 위해서다.
◇작년부터 문제된 블록딜, 무엇이 문제였나
지난해 이후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록딜 관련 논란은 주로 '매수자'와 '브로커'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주최하고 금융감독원,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제2기 금융투자업 법무실무 전문가를 위한 이브닝 아카데미'의 첫 강의도 블록딜을 둘러싼 논란들을 다뤘다.
첫날 강사로 나선 황현일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매수자가 블록딜로 매수하려는 주식을 실제 취득하기 전에 정규장에서 미리 공매도하는 행위가 불법인지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황 변호사는 "이미 복수의 증권사들이 블록딜과 연계된 공매도에 대해 금융당국의 부문검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며 "H증권은 올해 5월 블록딜 전 해당주식을 공매도했다는 혐의로 검찰통보 조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수자들이 정규장 종가 대비 일정부분 할인된 가격에 물량을 받아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음날 아침까지 어떤 변수가 돌발해 대규모로 보유하게 된 주식의 가치가 급변할 수 있는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당일 공매도가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기관투자자 A사가 어떤 주식의 보유자로부터 블록딜로 물량을 사올 경우 당일 정규장 종가(100원) 대비 5% 가량 할인된 가격(95원)으로 물량을 받아온다. 실제 매수자인 A사가 물량을 받는 시점은 정규장 마감 이후 시간외시장에서다. A사는 실제 물량을 받을 때의 가격(95원)과 당일 정규장 종가(100원) 사이의 마진(5%)를 확정짓기 위해 공매도를 실시하게 된다.
실제 A사가 공매도를 실시하게 되면 매물압박으로 정규장 종가가 직전예상가격(100원)보다 낮은 가격에 형성될 수도 있다. 이 때 A사는 직전예상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자로부터 물량을 받아올 수 있다. 올들어 문제가 된 H증권의 케이스도 △어떤 종목의 주식을 블록딜을 통해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규장 증시에서 주식을 매도한 결과 종가가 하락했고 △그 결과 H증권이 더 낮은 가격에 주식을 인수한 게 문제가 됐다.
이 경우 적용될 수 있는 조항은 자본시장법의 '직무관련 정보의 이용금지'(54조) 규정이다. 이 조항은 "금융투자업자는 직무상 알게 된 정보(이번 경우는 블록딜이 일어난다는 사실)로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정당한 사유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 변호사는 "국내증시는 아직 가격변동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주식선물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같은 환경에서 블록딜로 주식을 매수하려는 기관투자자가 미리 해당주식을 차입해 공매도하지 않으면 다음 개장일까지 가격변동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고 말했다.
그는 "블록딜로 대규모로 주식을 사면서 미리 공매도로 리스크를 줄이지 않는다면 한편에서 재무건전성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매수예정 주식을 공매도하려고 해도 매수예정 물량에 상당하는 주식을 한꺼번에 차입하기도 어렵다"며 "실무상으로는 블록딜로 매수할 물량의 10~20% 정도만 겨우 차입해 공매도하는 데 그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블록딜 연계 공매도로 실제로 줄일 수 있는 리스크는 노출된 전체 리스크의 10~20%에 그친다는 얘기다.
황 변호사는 "시장에 공매도 매물을 출회하면 불가피하게 가격하락 압박이 생긴다"며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상 이해상충의 문제(44조)가 거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정규장 증시에서 기관투자자가 공매도를 실시할 때 거래상대방은 불특정 다수"라며 "이들 '불특정 다수'가 과연 자본시장법에서 정의하는 '금융투자업자의 고객(투자자)'인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블록딜 매수를 위해 공매도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빠지면 공매도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며 "이 때 매도자가 블록딜을 취소하면 (매수하려던) 기관이 아무런 이익도 못 얻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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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딜 알선수재, 과연 중범죄인가?
이날 강의에서는 지난해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이 발표한 블록딜 알선수재 사안도 다뤘다. 증권사 임직원과 한국거래소 직원이 블록딜을 주선해주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던 건이다. '브로커'에 관련된 이슈다.
블록딜은 그 속성상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은 이들만 행할 수 있다. 지난해 문제가 된 증권사 임직원과 거래소 직원의 알선행위는 금융투자업자로서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매매를 중개한 점이다. 엄청나게 복잡한 금융기법을 동원해야만 감행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 단지 무면허업자의 주선행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행 법령은 이같은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규정하고 있다. 특경가법(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수재 등의 죄' 조항(제5조)은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소속 금융사 또는 다른 금융사 등 임직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의 알선에 관해 금품 등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했을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또 수수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그 처벌은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황 변호사는 "특경가법에 따르면 블록딜을 알선하고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는 최고 무기징역형이나 10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로 규정돼 있다"며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블록딜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매매형식이라는 이유로 위와 같은 행위가 중범죄라는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행위에 비해 법이 규정하는 형량이 비례에 맞지 않게 과중하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황 변호사는 "수십년전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무렵에는 연줄을 동원해 은행에서 대출만 받으면 이익을 얻던 시절이 있었다"며 "특경가법의 수재죄 조항은 그동안 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해하거나 시장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불법대출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또 "물론 (불법적 방법으로) 시세를 조종해 주가를 잔뜩 띄운 후 대규모 블록딜을 주선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고가에 주식을 떠넘기는 등 악질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난해 문제가 됐던 카카오 주식의 블록딜의 경우 비상장 상태에서 거래가 자유롭지 않은 주식의 매매를 알선한 것"이라며 "금융투자업계의 일반적인 인식상 이같은 행위가 중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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